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주지훈과 박성웅이라는 조합, 흥신소와 검사라는 설정을 보는 순간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먼저 들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기대치가 낮았던 탓인지, 생각보다 훨씬 잘 만든 영화였습니다. 불법과 합법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하이브리드 수사 방식이 이 영화의 핵심 재미입니다.뻔할 것 같았던 설정, 실제로 보니 달랐다일반적으로 한국 범죄 영화의 주인공은 정의감에 불타는 형사나 검사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그런 공식을 그대로 따르는 영화는 갈수록 피로감을 줍니다. 젠틀맨의 주인공 지현수는 달랐습니다. 처음부터 영웅이 아닙니다. 의뢰 성공률 높은 흥신소 사장이 우연히 교통사고로 검사 신분증을 손에 넣고, 살기 위해 그 신분을 이용하는 것이 출발점입니다.저도 처음엔..
사기꾼이 조 단위로 돈을 벌면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영화 마스터는 그 질문을 냉소적으로 던지며 시작합니다. 실존 인물 조희팔 사건을 모티브로 한 이 영화, 저는 꼬꼬무에서 먼저 사건을 접하고 나서 봤는데 그게 오히려 더 선명하게 다가왔습니다.조희팔과 유사수신, 현실이 영화보다 무서웠습니다영화의 핵심 소재는 유사수신행위입니다. 유사수신행위란 금융당국의 인가 없이 불특정 다수에게 투자금을 받고 이자나 수익을 약속하는 불법 행위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은행처럼 행세하면서 법적 보호 장치 없이 돈을 긁어모으는 구조입니다. 진현필 회장이 설명회에서 "매일 이자를 통장에 입금해 드리겠다"고 외치는 장면이 바로 이 수법의 교과서적인 장면입니다.실제 조희팔은 2004년부터 수년에 걸쳐 약 4조 원 규모의 투자 사기..
좋은 영화를 고를 때 완성도만 따지고 계신가요? 저는 한동안 그랬는데, 어느 날 완성도와 몰입감이 전혀 다른 개념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영화 정보원을 보면서 그 생각이 확실해졌습니다. 엄청 잘 만든 영화는 아닌데 보는 내내 이상하게 빠져들었거든요. 이 글은 그 이유를 풀어보면서, 비슷한 경험을 하셨던 분들께 이 영화를 어떻게 즐기면 더 좋은지 안내해 드리려고 씁니다. 캐릭터의 허술함이 오히려 몰입을 만드는 이유보통 범죄 영화에서 형사와 정보원은 날카롭고 냉정한 인물로 그려집니다. 그래야 긴장감이 생긴다고 다들 생각하죠. 그런데 정보원은 그 공식을 완전히 뒤집습니다. 오남혁은 강등을 밥 먹듯이 당하고, 조태봉은 조직 몰래 금괴를 빼돌려 용돈이나 챙기는 인물입니다. 제가 처음 이 설정을 봤을 때는 솔직히 ..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흑금성이라는 인물을 그냥 교과서 속 단어처럼만 알고 있었습니다. JSA에서 2년간 복무하면서 북한을 코앞에서 바라봤던 사람이 이 정도였으니, 일반 관객들은 오죽했을까요. 영화 공작은 실제로 있었던 대북 공작 작전을 바탕으로 한 작품인데, 보고 나서 제가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새삼 느꼈습니다. 실화의 무게: 흑금성 작전의 배경영화의 배경이 된 흑금성 작전은 1990년대 초반, 대한민국 안기부(국가안전기획부)가 북한 권력층에 침투시킨 실제 대북 공작 작전입니다. 안기부란 지금의 국가정보원(NIS) 전신으로, 당시 국내외 정보 수집과 대공 업무를 총괄하던 기관입니다.공작원 박성영은 안기부로부터 신분 세탁, 즉 레전드(legend) 구축을 지시받습니다. 레전드란 첩보 용어로, ..
솔직히 저는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기까지 이런 희생이 있었다는 걸 전혀 몰랐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야 장사 해안에서 먼저 피를 흘린 학도병들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현충일을 앞두고 다시 꺼내 보게 된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이 글은 2019년 개봉한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의 실화 배경과 제가 느낀 것들을 솔직하게 담았습니다. 장사상륙작전, 알려진 것과 실제는 달랐습니다인천상륙작전 하면 맥아더 장군이 먼저 떠오르는 게 보통입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 작전의 성공을 뒤에서 받쳐준 또 다른 작전이 있었고, 거기에 중학생과 고등학생들이 동원됐다는 사실을 영화를 통해 처음 알게 됐습니다.장사상륙작전은 성동격서(聲東擊西) 전술의 일환이었습니다. 성동격서란 동쪽에서 소리를 내며 실제로는..
현충일이 가까워질 때마다 저는 유독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얼마 전 파주 전망대에 갔다가 학도병이 어머니에게 쓴 편지 앞에서 한참을 발걸음을 떼지 못했습니다. 중고등학생 나이의 아이들이 쓴 그 편지를 읽으면서, 영화 '포화 속으로'가 다시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그 영화가 담은 이야기가 단순한 창작이 아니라는 걸 그 자리에서 새삼 실감했습니다. 학도병과 포항전투, 우리가 잘 모르는 실화의 무게1950년 8월, 북한군 766부대 300여 명이 포항으로 내려올 때 그 앞에 선 건 국군도 미군도 아니었습니다. 총 한 번 제대로 쥐어본 적 없는 71명의 학도병이었습니다. 여기서 학도병이란 정규 군사 훈련을 받지 않은 채 자원 또는 징집되어 전선에 투입된 10대 학생 병사를 말합니다. 이들은 훈련 기간도, 충분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