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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찜 목록에 쌓아두고 몇 달째 손도 안 댔던 영화가 있었습니다. 2023년 개봉한 영화 사채소년이었는데, 어느 날 문득 썸네일을 다시 보다가 그냥 클릭해버렸습니다. 강미나 배우가 출연한다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IOI 시절부터 팬이었던 터라 그게 결정적인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좋아하는 배우 때문에 보기 시작했다가 영화 자체가 주는 주제로 꽤 오래 생각하게 만들더라고요.
강미나 때문에 켰다가, 강진이라는 캐릭터에 꽂혔다
솔직히 처음엔 영화 내용보다 강미나 배우가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가 더 궁금했습니다. IOI 활동할 때부터 지켜봤던 배우인데, 드라마나 영화에서 꾸준히 작품을 골라서 나오는 모습을 보면 참 대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작품에서도 다영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했는데, 학교에서 선망의 대상인 퀸카이지만 실제로는 집안이 기울어져 어려운 형편을 숨기며 살아가는 인물이었습니다. 연기도 예전보다 훨씬 자연스러워졌다는 게 느껴졌고, 이제는 정말 배우로서 자기 자리를 잡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다 보니 주인공 강진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꽤 흥미로웠습니다. 학교 먹이사슬 최하층에서 숙제 셔틀로 살아가다가, 어쩌다 사채업자와 엮이면서 자기도 모르게 학생들을 상대로 한 비공식 대부업에 발을 들이게 됩니다. 여기서 대부업이란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금융업을 말하는데, 영화 안에서는 법의 테두리를 완전히 벗어난 형태로 그려집니다. 미성년자가 미성년자를 상대로 돈을 빌려주는 구조라는 점에서 꽤 씁쓸했습니다.
특히 캐스팅이 절묘했습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데, 이찬영 배우가 맡은 남영이라는 일진 캐릭터가 진짜 잘나가는 학교 권력자처럼 보였거든요. 좀 잘생기고 여자애들한테 인기 있는 일진 특유의 분위기를 그대로 갖고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강진이 그 위에 올라서려는 장면들이 훨씬 통쾌하게 느껴졌습니다. 유선호 배우가 연기한 만수 역할도 인상 깊었는데, 찐따 같은 역할이라는 표현이 좀 거칠지만 솔직히 그 어색하고 어눌한 캐릭터가 정말 잘 어울렸습니다.
- 강미나 배우의 다영 역: 겉으론 퀸카, 속으론 생활고를 버티며 살아가는 이중적 캐릭터
- 이찬영 배우의 남영 역: 학교 권력 구조의 정점에 있는 일진, 캐스팅 자체가 몰입도를 높임
- 유선호 배우의 만수 역: 주인공의 유일한 친구이자 이야기의 감정선을 잡아주는 존재
권력은 어디서나 작동한다, 학교도 예외가 아니었다
영화 중반까지는 꽤 재밌게 봤습니다. 강진이 사채업자 최랑 밑에서 수금 방법을 배우고, 그 기술을 학교 안에서 응용하기 시작하는 과정이 나름 탄탄하게 그려졌습니다. 최랑이 가르쳐주는 수금 방식 중에 '채무자를 주변에 공개적으로 망신시키는 것'이 핵심이었는데, 이를 사회적 낙인화 전략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사회적 낙인화란 특정인에 대한 부정적 정보를 공동체 안에 퍼뜨려 그 사람을 고립시키는 방식을 말하는데, 실제 불법 사금융 업계에서도 이런 방식이 심각한 문제로 지적됩니다(출처: 금융감독원).
강진이 남영의 아버지 직장까지 찾아가서 채무를 공개하고, 계약서에 도장을 받아내는 장면은 제가 보면서 실제로 좀 통쾌했습니다. 숙제 셔틀 취급받던 애가 그 위에 올라서는 순간이었으니까요. 그런데 그 쾌감이 채 가시기도 전에 강진도 결국 같은 구조에 종속되어 있다는 게 드러납니다. 영화가 보여주려 한 건 결국 이거였던 것 같습니다. 권력 구조 안에서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봤자, 자기도 누군가에게 밟히는 구조의 부품일 뿐이라는 것.
실제로 청소년 불법 사금융 피해는 국내에서 꾸준히 보고되고 있는 문제입니다. 법정 최고이자율은 현재 연 20%로 제한되어 있지만(출처: 법제처), 영화 속에서는 매주 10% 복리를 버젓이 계약서에 박아놓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복리란 이자에 또 이자가 붙는 방식으로, 원금이 시간이 지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구조를 말합니다. 이걸 고등학생에게 적용했다는 설정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실제 청소년 피해 사례와 비교하면 완전히 허구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학생들 사이에서 돈을 빌리는 수요가 생기는 장면이었습니다. 한정판 신발, 화장품, 용돈이 바닥났을 때의 그 허전함. 어른들의 사금융 생태계가 학교 안으로 그대로 복사되어 들어오는 과정이 꽤 설득력 있게 그려졌습니다.
후반부가 너무 아쉬웠다, 파국은 좋은데 수습이 문제였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후반부에서 많이 아쉬웠습니다. 저는 원래 배드엔딩이나 파국적인 전개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런 결말이 오히려 현실감 있다고 느끼거든요. 그런데 사채소년의 후반은 파국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파국이 너무 갑작스럽게 쏟아졌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만수가 일진들을 막다가 처맞고 응급실에 실려가고, 신지는 자해를 택하고, 희원이는 극단적인 행동을 합니다. 이 모든 게 짧은 시간 안에 연달아 터지니까 감정이입이 되기보다 당황스러운 감각이 먼저 왔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구성은 창작자가 '강렬하게 전달하고 싶다'는 욕심이 앞설 때 자주 나타납니다. 각각의 에피소드가 충분히 쌓이지 않은 상태에서 결말을 위해 캐릭터들을 극단으로 몰아버리는 방식인데, 오히려 감동보다 피로감을 줄 때가 많습니다. 뭔가 보여주고 싶은 건 분명했는데, 표현력이 거기까지 따라가지 못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나마 다영의 이야기가 후반부에서 가장 정리된 편이었습니다. 조건만남이라는 설정 자체가 꽤 무거운 소재인데, 다영이 형사의 회유를 거부하고 스스로 자수를 선택하는 장면은 캐릭터로서 납득이 갔습니다. 특히 대화 내용을 미리 녹음해뒀다는 반전은 그 장면에서 유일하게 시원하다는 감각이 들었습니다. 강미나 배우가 그 장면을 꽤 차분하게 소화해냈고요.
전체적으로 보면 킬링타임용으로는 충분히 볼 만한 영화입니다. 다만 작품성을 기대하고 본다면 분명 아쉬움이 남을 수 있습니다. 청소년 범죄, 사금융, 학교 권력 구조라는 묵직한 소재들을 가져왔는데, 그 무게를 끝까지 일관되게 다루지 못한 게 가장 큰 약점으로 보입니다.
- 중반까지: 권력 역전 과정이 설득력 있게 전개되어 몰입도 높음
- 후반부: 복수의 극단적 사건이 단기간에 집중되어 감정 과부하 발생
- 다영 캐릭터 결말: 상대적으로 납득 가능한 서사로 마무리된 편
- 총평: 킬링타임 이상 작품성 이하, 소재 선택은 좋았으나 완성도가 아쉬움
사채소년, 좋은 평점을 받은 영화는 아닙니다. 그런데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권력이라는 것에 대해 꽤 오래 생각했습니다. 어른들 세계에서만 작동하는 줄 알았던 것들, 채권과 채무, 이자, 낙인, 배신 같은 것들이 학교 안에서도 똑같이 작동한다는 게 영화가 말하고 싶었던 핵심이었을 겁니다. 메시지 자체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강미나 배우 팬이시거나, 학교를 배경으로 한 서바이벌 성격의 이야기를 좋아하신다면 한 번쯤 보실 만합니다. 단, 후반부는 마음의 준비를 조금 하고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생각보다 분위기가 어수선하게 흘러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