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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개봉한 창궐은 조선시대라는 전통 사극 배경에 좀비물을 결합한 국내 최초 수준의 장르 실험작입니다. 저는 평소 좀비 장르를 거의 보지 않는 편인데, 이 영화만큼은 "조선에 좀비?"라는 물음 하나가 너무 강렬해서 결국 찾아보게 됐습니다.

    조선 + 좀비, 이 조합이 얼마나 참신한가

    일반적으로 좀비물은 현대 도시를 배경으로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영화 속 감염자들이 총기나 차량, 건물 구조를 활용한 탈출 서사와 맞물리기 때문이죠. 그런데 창궐은 그 공식을 정면으로 깨버립니다. 화승총과 성곽, 갓을 쓴 무장들이 야귀 떼와 마주하는 장면은 제가 직접 봤을 때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이게 어색하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첫 장면 이후로 사라졌으니까요.

    영화의 핵심 설정은 이렇습니다. 서양에서 유입된 정체불명의 감염원이 이양선(異樣船), 즉 서양 선박을 타고 조선에 들어옵니다. 여기서 이양선이란 조선 후기 해안에 출몰했던 서양식 범선을 가리키는 역사 용어입니다. 이 이양선을 통해 들어온 좀비 감염자가 조선 땅에 퍼지면서 '야귀(夜鬼)'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됩니다. 야귀란 밤에 사람을 습격하고, 물린 자를 같은 존재로 변이시키는 감염형 괴물로, 현대 좀비 개념을 조선식으로 재해석한 표현입니다.

    저는 2016년 부산행을 보고 처음으로 한국형 좀비물에 눈을 뜬 케이스입니다. 그때까지는 해외 좀비 영화를 거의 손대지 않았을 만큼 장르 자체에 거리를 뒀는데, 부산행이 그 인식을 바꿨고 창궐이 그 다음 선택지가 됐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 조합만큼은 충분히 성립한다는 걸 직접 확인했습니다.

    • 이양선을 통한 감염원 유입: 역사적 실제 소재를 장르와 접목한 설정
    • 야귀: 전통적 귀신 명칭을 좀비의 조선식 명명으로 재활용
    • 화승총·성곽 등 시대적 소품이 생존 액션의 도구로 자연스럽게 기능
    요약: 이양선과 야귀라는 조선식 언어로 좀비 설정을 재해석한 창궐의 장르 결합은, 실제로 보면 예상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작동합니다.

    서사 아쉬움, 메시지는 있는데 전달이 거칩니다

    창궐의 이야기 구조는 꽤 명확합니다. 권력에 집착한 인간이 야귀라는 괴물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된다는 흐름이죠. 병조판서 김자준이 역모를 꾸미며 야귀를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고, 결국 스스로 변이의 경계에 서게 되는 서사는 영화가 전달하려는 주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문제는 그 상징이 서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피어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장르 영화의 서사 완성도를 평가할 때 흔히 쓰이는 기준 중 하나가 서브텍스트(subtext)입니다. 서브텍스트란 대사나 행동으로 직접 말하지 않아도 장면 속에서 의미가 전달되는 층위를 말합니다. 창궐은 이 부분에서 제 경험상 아쉬움이 가장 컸습니다. 주인공 이청이 "백성이 있어야 왕도 있다"고 말하는 장면이 대표적인데, 이 대사가 나오는 순간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느낌이었습니다. 한국 영화진흥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장르 혼합형 영화에서 주제 전달 방식은 서사 몰입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조연 배우들의 활용도 개인적으로 걸렸습니다. 서지혜 배우가 맡은 역할은 분명히 이야기 안에서 중요한 위치인데, 스크린 타임이나 극 내 비중이 그 위치에 비해 너무 작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 아쉬움이 지금도 남아 있을 만큼, 현장감 있는 캐릭터가 될 수 있었던 여지가 충분했다고 봅니다.

    • 주제 의식은 분명하나, 서브텍스트보다 직접 대사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함
    • 서지혜 배우 등 일부 조연 캐릭터의 서사적 활용이 아쉬운 수준
    • 권력과 괴물화라는 상징 구조는 뚜렷하나, 장면 속 녹여내기가 다소 부족
    요약: 창궐의 메시지는 선명하지만, 그 메시지를 서사로 보여주는 방식이 거칠어 몰입의 흐름이 끊기는 순간이 존재합니다.

    장르 실험으로서의 의미, 이 영화가 남긴 것

    완성도 논란과 별개로, 창궐이 한국 영화사에서 갖는 장르 실험적 의미는 분명합니다. 사극과 좀비물이라는 이질적인 두 장르를 결합하는 시도 자체가 당시로선 생소했고, 그 도전이 이후 킹덤 같은 작품들의 성공에 간접적인 발판이 됐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실제로 넷플릭스의 드라마 킹덤도 조선 좀비 설정을 공유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출처: Netflix 킹덤).

    시각적 완성도는 제 경험상 일정 수준 이상을 유지한다고 봅니다. 특히 미장센(mise-en-scène), 즉 화면 안에 배치된 모든 시각 요소들의 구성 방식이 인상적입니다. 야귀 떼가 성곽을 넘어오는 밤 장면에서 횃불과 어둠의 대비, 그 안에서 움직이는 인물들의 실루엣은 공포와 긴장을 꽤 효과적으로 전달했습니다. 다만 CG의 질감이 일부 구간에서 고르지 않아, 몰입이 순간적으로 끊기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현빈과 장동건이 함께 스크린에 등장한다는 것 자체가 영화관을 찾게 만드는 이유였는데, 저는 개봉 당시 영화관에서 보진 못하고 나중에 따로 챙겨봤습니다. 그럼에도 두 배우가 만드는 장면의 밀도는 충분히 값어치가 있었습니다. 액션 시퀀스의 리듬감, 특히 이청이 야귀 무리를 상대하는 전투 장면은 사극 특유의 무게감을 살리면서도 템포를 잃지 않았습니다.

    • 국내 최초 수준의 사극 좀비 결합으로 장르 확장 가능성을 입증
    • 미장센과 야간 조명 연출에서 시각적 완성도를 보여줌
    • 킹덤 등 이후 작품들의 성공에 장르적 선례를 제공
    요약: 서사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창궐은 조선 좀비라는 장르 실험 자체로 한국 콘텐츠의 지평을 한 칸 넓힌 작품입니다.

    창궐은 완벽한 영화가 아닙니다. 서브텍스트보다 대사에 의존하는 서사, 아쉬운 조연 활용, 고르지 않은 CG가 분명 눈에 걸립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강하게 권하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조선이라는 공간에 좀비라는 코드가 이 정도로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다는 걸 처음 보여준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좀비물을 좋아하지 않는 저도 끝까지 화면을 놓지 못했다면, 장르 팬이라면 말할 것도 없습니다. 아직 안 보셨다면 지금이라도 챙겨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kbLLopDEWc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