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엄마가 사다 주신 위인전집에서 처음 만난 장영실은 저에게 '천재'의 대명사였습니다. 그 시절 책 속 인물이 스크린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걸 보니, 괜히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는 세종대왕과 장영실이라는 두 인물의 관계를 중심으로, 조선의 과학과 문화가 어떻게 꽃피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장영실, 관노에서 발명가로역사 교과서에서 장영실을 처음 배울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뛰어난 발명가' 정도로만 기억합니다. 일반적으로 장영실은 업적만으로 소비되는 인물인데, 저는 이 영화를 보고서야 그의 출발점이 얼마나 낮은 곳이었는지를 다시 실감했습니다.장영실은 동래현의 관노(官奴) 출신이었습니다. 여기서 관노란 지방 관청에 소속된 노비를 의미하며, 조선 신분제에서 가장 낮..
솔직히 저는 '간첩'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오랫동안 딱 하나의 장면만 떠올랐습니다. 1996년 강릉 앞바다에 좌초된 북한 잠수함, 그리고 그 안에서 쏟아져 나온 무장 요원들 이야기입니다. 그 사건이 어린 시절 기억에 깊이 박혀 있어서인지, 간첩이라고 하면 냉혹하고 목적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미지가 전부였습니다. 그런 선입견을 갖고 2012년작 영화 《간첩》을 봤는데, 보는 내내 웃다가 끝에는 묘하게 찡한 감정이 남았습니다.간첩 영화인데 왜 이렇게 웃기지? 코미디로 읽는 설정제가 처음 이 영화를 고른 건 순전히 김명민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기 시작하니 설정 자체가 너무 재미있어서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영화의 핵심 설정은 이렇습니다. 십수 년 전 남파된 공작원들이 아무런 지령도 받지 못한 채 한..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2007년 개봉 당시 이 영화를 그냥 흘려보냈습니다. "또 납치 스릴러겠지"라고 가볍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최근 다시 꺼내 보고 나서 후회했습니다. 이건 단순한 납치극이 아니었습니다. 두 엄마의 선택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보고 나서도 한참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작품이었습니다.승률 99%의 변호사가 7일 안에 살인범을 무죄로 만들어야 한다면여러분은 딸의 목숨과 살인범의 석방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상황을 상상해보신 적 있으신가요?영화 는 2007년 윤재구 작가의 각본과 원신연 감독의 연출로 완성된 작품입니다. 주인공 이지연은 무패 변호사(無敗 辯護士), 즉 단 한 건의 패소도 없는 법정의 절대 강자로 그려집니다. 그런데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이 '무패'라는 수식어가 얼마나 냉혹한 ..
층간소음 범죄가 한 해 평균 수만 건 신고되는 나라에서, 그 소음을 살인사건의 단서로 쓴 영화가 나왔습니다. 2022년 개봉한 한국 스릴러 입니다. 저는 부모님 아파트에서 층간소음 문제를 직접 겪은 뒤로 이 소재에 유독 민감해졌는데, 그래서인지 가벼운 마음으로 틀었다가 어느 순간부터 인상을 찡그리며 보게 됐습니다.층간소음, 이게 영화 소재가 된다고?층간소음이 단순한 생활 불편을 넘어 사회적 갈등으로 비화된 지는 꽤 됐습니다. 국토교통부 층간소음이웃사이센터(출처: 층간소음이웃사이센터)에 따르면 층간소음 민원 신고 건수는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실제 폭행이나 칼부림으로 이어진 사건이 뉴스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게 현실입니다.저희 부모님도 아파트 19층에 사십니다. 조카들이 놀러 가면 아래층 아저씨가 직..
우리 집 도어락이 정말 우리를 지켜주고 있을까요? 2018년 개봉한 영화 은 그 믿음을 정면으로 흔들어 놓습니다. 지방 도시의 작은 오피스텔에서 혼자 사는 은행원 경민의 이야기인데, 저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이건 어느 뉴스에서 실제로 본 이야기다"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가장 안전해야 할 공간이 가장 위험한 공간이 된다는 설정이, 너무 현실적이어서 오히려 더 소름이 돋았습니다.현실 공포 — 영화가 아닌 뉴스에서 먼저 봤다일반적으로 스릴러 영화는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며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그런 편이었는데, 은 달랐습니다. 한 달 전쯤 서울 아파트에서 창문을 뜯고 침입해 귀중품을 훔쳐간 도둑이 아직도 잡히지 않았다는 소식을 접했는데, 그 이후에 이 영화를 보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이 영화를 처음 접했을 때 신혜선 배우 하나만 보고 클릭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변요한의 연기에 완전히 넘어가버렸어요. 남의 집을 몰래 훔쳐보는 공인중개사가 시체를 발견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설정만 들으면 황당할 것 같죠? 직접 보시면 생각이 달라질 겁니다.구정태라는 캐릭터,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혹시 남의 일상이 궁금해서 SNS를 몇 시간씩 들여다본 적 있으신가요? 구정태는 그 욕구를 아예 오프라인으로 옮겨버린 인물입니다. 공인중개사라는 직업 특성상 고객의 열쇠를 맡게 되는데, 그 열쇠로 집에 몰래 들어가 구석구석 살피는 것이 그의 취미이자 낙입니다.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 남자가 절대 나쁜 짓을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고장 난 장롱 문을 몰래 고쳐주고, 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