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영화 '프로젝트Y' 리뷰 여성 누아르, 캐릭터, 여성 서사, 영화제 공식초청

by moneymakesman 2026. 5. 12.

넷플릭스 추천 알고리즘을 뒤지다 보면 가볍게 틀어놓을 영화는 넘쳐나는데, 막상 진짜 뭔가 꽂히는 걸 찾으면 없는 날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날 팝콘을 직접 준비해두고 프로젝트Y를 골랐습니다. 한소희와 전종서가 함께 나온다는 것만으로 이미 반은 기대가 채워진 상태였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팝콘이 언제 다 사라졌는지 모를 정도로 몰입은 됐지만, 영화관에서 나오면서 느끼는 그 충만한 여운은 없었습니다.

누아르 장르의 문법, 이 영화는 얼마나 지켰나

저는 누아르 영화를 꽤 좋아합니다. 그것도 남성 중심 서사가 아닌 여성 캐릭터가 이끄는 누아르라면 더욱이요. 프로젝트Y는 그 기대치를 최대로 끌어올린 채로 봤습니다.

누아르(Noir)란 원래 1940~50년대 미국 범죄 영화에서 출발한 장르로, 도덕적 모호함, 운명론적 세계관, 어두운 조명과 스타일리시한 화면 구성을 특징으로 합니다. 쉽게 말해 선악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고, 주인공도 어두운 면을 지닌 채 불가피한 선택을 반복하는 이야기 구조입니다. 이 기준으로 보면 프로젝트Y는 절반쯤 누아르입니다.

감각적인 조명 연출과 화중시라는 가상의 공간 설정은 분명히 누아르의 미장센(mise-en-scène), 즉 화면 안에 배치된 모든 시각 요소를 의미하는 개념을 충실히 살렸습니다. 음악 감독 그레이만의 사운드트랙도 귀를 잡아끄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스타일만큼은 좋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건 지금도 변함없는 제 솔직한 평입니다.

문제는 서사의 밀도입니다. 누아르의 핵심은 스타일 이전에 캐릭터의 내적 논리입니다. 주인공이 왜 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필연성이 관객을 끌어당겨야 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 부분에서 자꾸 흔들렸습니다.

캐릭터의 설득력, 팝콘을 멈추게 한 순간들

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가장 크게 걸렸던 부분은 캐릭터의 행동 개연성이었습니다. 개연성(蓋然性)이란 어떤 사건이나 행동이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고 납득되는 정도를 뜻합니다. 이 개연성이 흔들리면 아무리 배우가 잘 연기해도 관객은 화면 밖으로 밀려나게 됩니다.

특히 아쉬웠던 지점을 솔직하게 짚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미선이 자신을 업계에 팔아넘긴 엄마에게 도움을 청하는 장면: 그 선택의 감정적 동기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아 당황스러웠습니다.
  • 엄마가 금괴를 싣고 호스트바로 향하는 행동: 맥락 없이 튀어나와 코미디인지 진지한 전환인지 구분이 어려웠습니다.
  • 빌런 토사장이 주인공들을 잡을 기회를 반복적으로 흘려보내는 장면: 위협적인 캐릭터로 설정됐음에도 후반부로 갈수록 힘이 빠졌습니다.

한소희와 전종서의 에너지는 의심할 여지 없이 폭발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그 에너지를 스크린 끝까지 끌고 가지 못한 느낌이었습니다. 배우들이 달리고 있는데, 스토리가 그 발목을 잡는 구조랄까요. 카타르시스(catharsis)란 억눌린 감정이 폭발하며 해소되는 심리적 경험을 말하는데, 범죄물에서 이 카타르시스가 살아있으려면 악당이 실제로 위협적이어야 하고 주인공의 반격이 통쾌해야 합니다. 이 영화는 그 두 조건을 동시에 충족하지 못한 채 마무리됩니다.

여성 서사라는 명찰, 붙여도 되는 걸까

프로젝트Y를 둘러싼 홍보 문구 중 하나는 여성 서사, 혹은 여성 주도 범죄물이라는 방향성이었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여성 서사(女性 敍事)란 단순히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게 아니라, 여성이 경험하는 구조적 불합리나 사회적 맥락이 서사 안에 녹아들어 공감을 이끌어내는 방식입니다. 쉽게 말해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여성 서사가 되지는 않습니다. 영화의 두 주인공이 처한 상황이나 행동 방식이 일반적인 여성 관객이 자신의 경험과 포개어 공감하기에는 상당히 특수한 맥락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건 나쁘다는 게 아니라, 마케팅 방향이 관객의 기대치를 잘못 설정한 것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기대치 문제는 실제 관람 경험에서 체감이 됩니다. 제가 직접 봤을 때 전반부의 전개는 꽤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부동산 사기로 피 같은 전 재산을 날리는 상황은 요즘 시대에 누구라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설정입니다. 실제로 국내 부동산 사기 피해 규모는 2023년 기준 전세사기 피해 신고 건수만 1만 건을 넘어섰습니다(출처: 국토교통부). 이 배경 설정만큼은 현실 밀착형으로 잘 짚었습니다. 하지만 그 공감대가 후반부 서사와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못한 채 단절됩니다.

토론토·부산이 주목한 이유, 그래도 건진 것들

그럼에도 이 영화가 토론토 국제 영화제(TIFF)와 부산 국제 영화제(BIFF)에 공식 초청되고 런던 아시아 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은 건 이유가 없지 않습니다. TIFF는 북미에서 오스카 시상식의 전초전으로 불릴 만큼 권위 있는 영화제로, 이 무대에 초청됐다는 것 자체가 작품의 스타일과 연출력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의미입니다(출처: 토론토 국제 영화제).

제가 직접 보면서 이건 진짜 건졌다고 생각한 부분은 배우들의 연기와 화면 자체의 질감이었습니다. 김성철이 연기한 토사장은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분명히 위압감이 있었고, 유아의 변신도 예상보다 훨씬 날카로웠습니다. 정영주와 이재균 같은 조연진의 존재감도 짧은 장면에서 확실히 남는 인상을 줬습니다.

108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영화가 지루하지 않았다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몰입감을 만드는 건 스토리만이 아니라 배우와 화면이기도 하다는 걸 이 영화가 증명하기는 했습니다. 다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이 모든 재료를 가지고 좀 더 밀어붙였다면 단순 범죄물을 넘어서는 뭔가가 됐을 거라는 아쉬움이 자꾸 머릿속에 남습니다.

결국 프로젝트Y는 화려한 재료를 갖추고도 레시피를 끝까지 지키지 못한 영화입니다. 배우들의 에너지, 스타일리시한 화면, 현실 밀착형 배경 설정이라는 세 가지 강점이 있었는데, 개연성 없는 캐릭터 행동과 후반부 서사의 급격한 전환이 그 강점을 상당 부분 희석시켰습니다. 극장에서 보기엔 조금 망설여지지만, 배우들의 연기와 스타일에 관심이 있다면 집에서 편하게 한 번 볼 만한 작품입니다. 저처럼 팝콘 챙겨서 보시면 적어도 손은 심심하지 않을 겁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cfNU2XERLe0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블로그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