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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을 소재로 한 영화라고 하면, 당연히 마블이나 DC 같은 헐리우드 작품을 먼저 떠올리지 않으셨습니까?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한국에도 꽤 오래전에 이 소재를 정면으로 다룬 영화가 있었고, 직접 챙겨보고 나서 예상과 꽤 다른 감상을 안고 나왔습니다. 영화 초능력자, 강동원과 고수 두 배우가 맞붙는 이 작품 이야기입니다.
한국 SF가 선택한 무대, 폐차장과 전당포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볼 때 솔직히 기대치를 좀 낮추고 시작했습니다. 한국 SF 장르물(SF Genre Film), 즉 과학적 상상력이나 초자연적 설정을 현실 배경에 접목한 장르는 헐리우드에 비해 제작 경험과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오랫동안 받아왔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국내 흥행 데이터를 보더라도 SF 소재는 국내 관객에게 낯선 편입니다. 영화진흥위원회(KOFIC) 통계에 따르면, 국내 흥행 상위권은 범죄, 액션, 드라마 장르가 압도적으로 많고 SF 장르의 천만 관객 돌파 사례는 극히 드뭅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그런 맥락에서 영화 초능력자가 선택한 무대는 굉장히 의도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외계 행성도, 거대한 연구소도 아닌 서울의 폐차장과 허름한 전당포. 주인공 균남은 그 안에서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버티는 평범한 남자입니다. 반면 강동원이 연기하는 초인은 눈빛 하나로 타인의 의지를 무력화하는 능력을 가졌습니다. 이 능력을 영화에서는 시각적 마인드 컨트롤(Visual Mind Control), 즉 시선을 매개로 상대방의 자율 의지를 빼앗아 조종하는 초능력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 이 설정이 화려한 CG보다 오히려 훨씬 서늘하게 다가왔다는 점입니다. 손에서 불꽃이 튀거나 하늘을 나는 것보다, 조용히 눈을 마주치는 순간 내 의지가 사라진다는 공포가 훨씬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초인의 출생 배경도 단순히 악당 서사로만 읽히지 않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 능력 때문에 가족에게마저 거부당하고, 스스로를 괴물로 규정하며 자란 인물입니다. "남들과 다르다는 거 당신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습니다"라는 대사가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식의 빌런 서사는 단순한 권선징악보다 훨씬 오래 머릿속에 남습니다.
초능력이 통하지 않는 남자, 균남의 정체
이 영화의 가장 흥미로운 설정은 초인의 능력이 유독 균남에게만 전혀 먹히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영화 안에서 명확한 설명이 주어지지는 않지만, 아기에게도 능력이 통하지 않는 장면을 함께 보면 맥락이 읽힙니다. 이른바 심리적 면역성(Psychological Immunity), 쉽게 말해 외부의 심리적 조작에 저항할 수 있는 내적 상태입니다. 이 개념은 심리학에서 실제로 연구되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가령 조작적 설득에 대한 저항 이론인 접종 이론(Inoculation Theory)은 사전 경험이나 순수한 신념 체계가 외부 조작에 대한 방어막이 될 수 있음을 설명합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균남의 또 다른 특징은 비정상적인 회복력입니다. 일반적으로 창작물에서 이런 능력을 묘사할 때 재생 인자(Regenerative Factor)라는 표현을 씁니다. 재생 인자란 신체 손상이 발생했을 때 일반인보다 빠른 속도로 세포가 회복되는 능력을 뜻하는 개념으로, 균남의 경우 치명적인 사고나 부상 이후에도 멀쩡히 살아 돌아오는 것으로 반복 묘사됩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운이 좋은 캐릭터처럼 보이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이 또한 초능력의 일종이라는 게 점점 선명해집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을 고르라면 바로 이 지점입니다. 화려한 능력을 가진 쪽보다, 그냥 안 죽고 쫓아오는 쪽이 더 무섭다는 역설적인 긴장감. 초인은 군중을 인형처럼 다루는데, 정작 혼자 뛰어다니는 균남 하나를 어쩌지 못합니다. 이 구도 자체가 영화의 가장 큰 재미였습니다.
이 영화를 특히 추천하고 싶은 분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헐리우드식 히어로물이 아닌 한국 특유의 현실 밀착형 설정을 선호하는 분
- 강동원, 고수 두 배우의 전성기 연기 대결을 스크린에서 확인하고 싶은 분
- 선악 구분이 단순하지 않고 빌런에게 감정이입이 되는 서사를 좋아하는 분
- 화려한 CG보다 분위기와 긴장감으로 밀고 가는 다크 판타지 장르에 관심 있는 분
다름을 용납하지 못하는 사회, 영화가 던지는 질문
영화를 보고 나서 며칠이 지나도 머릿속에 남았던 건 액션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초인이 어린 시절 눈이 가려진 채 엄마 손을 잡고 걷던 장면이었습니다. 그 아이가 왜 눈을 가려야 했는지, 그것이 결국 어떤 인간을 만들어냈는지. 영화는 그 흐름을 꽤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이 영화의 핵심은 사실 초능력보다 사회적 낙인(Social Stigma)에 가깝습니다. 사회적 낙인이란 특정 집단이나 개인의 속성을 부정적으로 규정함으로써 그를 주류 사회에서 배제하는 현상을 뜻합니다. 초인은 다름을 이유로 부모에게도, 사회에게도 받아들여지지 못했고, 그 결과 자신의 능력을 타인을 지배하는 방식으로만 쓰게 됩니다. 반면 균남은 그 능력이 무엇이든 성실하게 살아가는 방식을 선택했고, 그 차이가 두 인물의 결말을 갈랐습니다.
비주얼 면에서도 솔직히 말하면, 제가 직접 봤을 때 두 배우의 존재감이 워낙 강해서 영화의 완성도가 실제보다 더 높아 보이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남자인 저도 이 두 사람이 화면에 함께 나오면 자연스럽게 눈이 집중되더라고요. 그 비주얼 합이 영화의 몰입감을 상당 부분 끌어올린 것은 사실입니다.
이 영화는 마블을 기대하고 보면 다소 실망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식 다크 판타지의 감성, 그러니까 화려함보다 쓸쓸함이 더 짙은 방식으로 초능력을 풀어낸 작품을 경험하고 싶은 분이라면 충분히 챙겨볼 만한 작품입니다. 강동원과 고수가 맞붙는 장면을 한 번이라도 보고 나면, 왜 이 영화를 두고 비주얼만큼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왔는지 바로 이해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