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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이준익 감독 이름만 보고 무조건 명작일 거라 확신했습니다. 거기에 박정민, 김고은이라는 두 배우까지 캐스팅됐다는 걸 알고 나서는 기대치가 상당히 높아졌죠. 아는형님에서 박정민 배우가 서장훈과 짜증 연기 대결을 펼치는 장면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그 길로 바로 넷플릭스를 뒤져 변산을 찾아 틀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도 컸습니다.

    이준익 감독과 변산, 그 기대의 무게

    이준익 감독은 황산벌, 왕의 남자, 동주, 박열 등 장르를 넘나드는 필모그래피(filmography)로 한국 영화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감독입니다. 필모그래피란 한 감독이나 배우가 참여한 작품 전체 목록을 의미하는 용어로, 이준익 감독의 경우 역사극부터 인간 드라마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자랑합니다.

    변산은 2018년 작품입니다. 서울에서 래퍼로 성공을 꿈꾸지만 번번이 실패하는 주인공 학수가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뇌졸중 소식에 고향 변산으로 내려오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 설정 자체가 꽤 보편적인 공감대를 건드린다고 생각했습니다. 타지에서 꿈을 좇다 지쳐 있는 상태에서 고향 소식을 듣는 그 감각, 모르는 사람이 없을 테니까요.

    제가 대학 시절 충청도에서 잠깐 생활한 적이 있었는데, 영화 초반부에 흘러나오는 구수한 사투리가 그때 기억을 꺼내놓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영화 황산벌 이후 충청도 사투리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은 꽤 오랜만이라 그것만으로도 반가웠습니다. 저녁밥을 차려놓고 자리를 잡아 앉았는데, 도입부는 꽤 온기가 있었습니다.

    변산 영화가 관객과 나누고자 하는 핵심 정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꿈을 좇는 청년의 좌절감
    • 아버지와의 묵은 갈등과 화해라는 보편적 서사
    • 첫사랑, 동창, 고향이라는 향수(nostalgia) 코드

    여기서 향수란 단순한 그리움이 아니라 돌아갈 수 없는 시간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뜻하는 심리적 개념으로, 이 영화가 기댄 가장 중요한 정서적 축입니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KOFIC) 자료에 따르면 2018년 당시 한국 영화 시장에서 인간 드라마 장르는 관객 공감도 지표에서 꾸준히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었습니다(출처: 한국영화진흥위원회).

    개연성의 균열, 어디서부터 어긋났나

    문제는 중반부부터였습니다. 변산에 내려온 학수가 동창들과 얽히고 과거의 사건들이 하나씩 터져 나오면서, 저는 슬슬 화면과 거리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영화에서 내러티브 개연성(narrative coherence)이란 각각의 사건이 인과관계를 가지고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구조적 완성도를 뜻합니다. 쉽게 말해, 'A가 일어났으니 B가 생기는 게 납득된다'는 느낌이 유지돼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변산에서는 그 연결 고리가 중간중간 툭툭 끊겼습니다. 보이스피싱 오해로 경찰에 체포되는 에피소드, 교생 선생님이 학수의 시집을 훔쳐 시인으로 데뷔한 사건, 건달 용대가 원준의 부탁으로 학수를 방해하는 구도, 이 모든 상황들이 각각의 씬(scene)으로는 재미있을 수 있지만 하나의 흐름으로 묶이질 않았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이준익 감독이 젊은 세대의 감성을 따라가려다 어색하게 됐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쇼미더머니라는 리얼리티 음악 경쟁 프로그램을 서사의 뼈대로 삼은 시도 자체는 신선했지만, 감독의 기존 작품들이 가진 촘촘한 시대극 문법과 이 현재적 소재 사이의 간극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이를 장르 혼종성(genre hybridity) 문제라고 볼 수 있는데, 장르 혼종성이란 두 가지 이상의 이질적인 장르 문법이 한 작품 안에서 충돌하거나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그렇다고 볼 게 없는 영화는 아닙니다. 고준 배우가 연기한 건달 용대는 이 영화에서 가장 입체적인 캐릭터였습니다. 학수를 괴롭히던 어릴 적 기억을 가진 동창이 결국 서로 미안하다고 말하며 화해하는 장면은 꽤 진심이 전해졌습니다. 박정민 배우의 래퍼 연기도 실제로 들을 만한 수준이었고, 영화 전반에 흐르는 충청도 정서는 저처럼 그 동네에 연이 있는 관객에게는 묘한 온도감을 줬습니다.

    장르 혼종성과 관련해서 영화 비평계에서도 견해가 나뉘는 편입니다. 이런 시도를 창의적인 실험으로 보는 시각도 있고, 반대로 명확한 정체성을 잃게 만드는 요인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후자에 가깝습니다. 한국 영화 비평 전문 매체의 분석에 따르면 관객 평점과 비평가 평점 사이의 괴리가 큰 작품일수록 장르 혼종성이 두드러진다는 경향이 있습니다(출처: 씨네21).

    메시지는 좋았다, 하지만 담는 그릇이 문제였다

    변산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분명했습니다. 아버지는 임종 직전 학수에게 "잘 사는 것이 최고의 복수"라는 유언을 남깁니다. 원망과 단절로 이어지던 부자 관계가 결국 화해로 마무리되고, 학수는 쇼미더머니 스페셜 무대에서 랩으로 선미에게 고백하며 고향 변산 초등학교에서 결혼식을 올립니다. 해피엔딩입니다.

    카타르시스(catharsis)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카타르시스란 극적 갈등의 해소를 통해 관객이 감정적 정화를 경험하는 것을 뜻하는 연극·영화 이론의 핵심 용어입니다. 변산이 의도한 카타르시스는 분명 있었습니다. 다만 그 감정의 해소에 이르는 과정이 너무 많은 에피소드를 욱여넣은 탓에, 어느 하나도 충분히 익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개그는 개그답게 터지지 못했고, 신파는 신파답게 울리지 못했으며, 휴먼 드라마로서의 감동도 마지막 장면에서야 간신히 살아났습니다.

    이런 영화를 두고 "메시지는 알겠는데 영화 자체가 아쉽다"고 느끼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반면 "이런 정서 자체가 좋았다"는 시각도 분명 존재합니다. 저는 두 입장이 다 이해됩니다. 다만 이준익 감독이라서, 그리고 박정민과 김고은이라는 캐스팅이어서 기대치가 높아진 탓에 상대적으로 아쉬움이 더 크게 느껴진 것도 사실입니다. 훌륭한 배우들로 기본만 해도 괜찮은 작품이 나올 수 있었는데,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 하다 보니 정작 중요한 것들이 옅어진 느낌입니다.

    결국 변산은 좋은 재료를 가진 요리가 레시피를 너무 복잡하게 잡아 맛이 분산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안 보셨다면 한 번은 볼 만합니다. 단, 이준익 감독의 전작들과 비교하는 기대치는 조금 내려놓고 보시길 권합니다. 충청도 사투리가 주는 구수함과 고준 배우의 연기만으로도 충분히 한 번은 볼 이유가 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8oYjnal3XV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