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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느와르 영화를 좋아하신다면, 딱 한 편만 꼽으라고 했을 때 어떤 작품이 떠오르십니까? 저는 고민 없이 이 영화를 말합니다. 2012년 개봉한 윤종빈 감독의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처음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몇 번을 다시 봐도 질리지 않는 영화입니다.

    1980년대 부산, 이 시대를 왜 배경으로 골랐을까

    영화의 시작은 1982년 부산 세관입니다. 주인공 이현은 밀수꾼을 감시하는 하급 공무원인데, 세관 내부 비리가 수사망에 오르자 가족이 가장 적다는 이유 하나로 모든 책임을 떠안고 잘리게 됩니다. 이게 이현이라는 인물의 출발점입니다. 제가 이 장면을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주인공이 억울하게 잘리는 것도 모자라, 그 억울함을 풀 방법으로 범죄의 세계에 발을 들이는 선택을 하거든요. 선량한 피해자가 아니라, 처음부터 비열하게 계산하는 인간으로 그려집니다.

    영화의 역사적 배경은 단순한 장식이 아닙니다. 1980년대 후반 노태우 정부가 선언한 범죄와의 전쟁, 즉 조직폭력배 소탕 정책은 실제로 당시 부산을 중심으로 한 조직폭력 생태계를 뿌리째 흔든 실존 사건입니다. 영화는 이 정책이 단순히 나쁜 놈들을 잡는 것이 아니라, 공권력과 조직폭력이 오랫동안 공생해온 구조를 갑자기 끊어내는 과정이었음을 냉정하게 보여줍니다.

    군상극(群像劇)이라는 장르적 특성이 이 영화를 더 풍성하게 만듭니다. 여기서 군상극이란 한 명의 주인공이 아니라 여러 인물이 얽히고 설키며 각자의 욕망과 한계를 드러내는 서사 구조를 의미합니다. 이현, 형배, 조 검사, 파노까지 누구 하나 온전히 착하거나 나쁘지 않습니다. 모두가 자기 이익을 위해 움직이고, 그 충돌이 이야기를 끌어가죠.

    최민식과 하정우, 이 캐스팅이 왜 완벽한가

    제가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가장 강하게 남은 감상은 '최민식 배우가 아니었으면 이 역할은 누가 했을까'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이현이라는 인물은 공무원 출신이지만 돈과 권력 앞에서 본능적으로 계산하고, 친한 척하면서 뒤에서 배신하고, 위기를 특유의 뻔뻔함으로 빠져나갑니다. 이 비열함을 과하지도 않게,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도 않게 표현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최민식 배우는 그걸 해냅니다.

    하정우 배우가 연기한 형배는 반대 결의 매력입니다. 제 경험상 이 영화에서 하정우 배우만큼 카리스마와 인간적인 취약함을 동시에 보여준 경우가 드뭅니다. 부산 최대 조직의 수장이면서도 이현에게 거듭 배신당하는 인물인데, 그 배신당하는 장면들이 오히려 형배를 더 입체적으로 만듭니다. 선착장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이현과 나누는 마지막 대화는 지금도 생각나는 장면입니다.

    조연진의 존재감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제가 처음 김성균 배우를 봤는데, 단발머리 스타일로 등장했을 때 솔직히 '뭐야 이 사람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진짜 그 시대 조직 사람 같은 겁니다. 조진웅 배우, 마동석 배우까지 등장하는데, 각자의 씬에서 존재감이 확실합니다. 이걸 두고 앙상블 캐스팅(ensemble casting)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앙상블 캐스팅이란 주연뿐 아니라 조연 한 명 한 명을 균형 있게 배치해 전체 이야기의 밀도를 높이는 제작 방식을 말합니다.

    범죄와의 전쟁은 관객 수 472만 명을 동원하며 흥행에도 성공했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이 수치는 단순한 흥행 성적이 아니라 한국 누아르 장르가 대중적으로 얼마나 넓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로 읽힙니다.

    이 영화를 볼 때 놓치지 말아야 할 장면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형배와 이현이 처음 만나는 장면: 이현이 괜히 선을 타다가 망신당하는 부분인데, 이 만남이 두 사람의 긴 관계를 예고합니다.
    • 전원이 함께 걷는 장면: 한국 누아르 역사에서 손꼽히는 명장면으로, 저는 솔직히 이 장면 하나를 보러 이 영화를 다시 틀기도 합니다.
    • 차 안에서의 마지막 대화: 형배와 이현의 관계가 어디서부터 어긋났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씬입니다.

    왜 지금도 이 영화가 명작으로 불리는가

    누아르(noir)라는 장르는 원래 프랑스어로 '검다'는 뜻에서 유래했으며, 도덕적으로 모호한 인물들이 욕망과 배신 속에서 파국을 향해 가는 이야기를 핵심으로 합니다. 여기서 누아르란 선악의 경계가 흐릿한 세계를 배경으로 인간의 욕망과 타락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영화 장르를 말합니다. 범죄와의 전쟁은 이 장르의 문법에 1980년대 한국의 역사적 맥락을 정확하게 결합시킨 작품입니다.

    영화에서 공권력, 조직폭력, 그리고 그 사이에 낀 반달(半달, 조직과 합법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인물)이 공생하는 구조가 '범죄와의 전쟁' 선언 하나로 무너지는 과정은 단순한 액션 서사가 아닙니다. 시스템이 바뀔 때 가장 먼저 버려지는 건 그 시스템에 가장 깊이 기댄 사람들이라는 걸 보여주죠. 이현도, 형배도 결국 그 구조 안에서 움직인 인물들입니다.

    윤종빈 감독의 연출력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하고 싶습니다. 이 영화는 당시 그의 세 번째 장편이었는데, 미장센(mise-en-scène) 측면에서 눈에 띄는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여기서 미장센이란 화면 안에 배치된 모든 시각적 요소, 즉 배우의 위치, 조명, 배경, 카메라 앵글 등을 종합적으로 설계하는 연출 개념을 말합니다. 특히 시위대가 가득한 거리에서 형배가 습격당하는 장면은 혼란스러운 시대 분위기와 인물의 위기를 하나의 화면에 담아냅니다. 제 경험상 이렇게 시대 배경과 인물 서사를 동시에 처리하는 연출은 베테랑 감독도 쉽게 해내지 못합니다.

    한국 영화 산업에서 누아르 장르가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는 관객이 현실에서 보기 어려운 인간의 민낯을 안전하게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출처: 한국영상자료원). 범죄와의 전쟁은 그 기능을 가장 충실하게 수행한 작품 중 하나입니다.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으셨다면, 지금 바로 보시길 강하게 권합니다. 한국 느와르를 이미 즐겨 보셨던 분이라면 다시 꺼내서 보실 때 이현과 형배의 대사 한 줄 한 줄이 다르게 들릴 겁니다. 저는 볼 때마다 새로운 장면에서 멈추게 됩니다. 그게 명작의 조건이 아닐까 싶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69RJZ7TwDr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