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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지금은 모두가 아는 배우 7명이 한 코미디 영화에 모였습니다. 그 영화를 아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게 솔직히 좀 의외였습니다. 오늘처럼 하루 종일 비가 내리고 축 처지는 날, 제가 꺼내 든 게 바로 영화 머니백이었습니다.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만든 우당탕탕 판
앙상블 캐스팅(Ensemble Casting)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앙상블 캐스팅이란 한두 명의 주인공이 서사를 끌고 가는 게 아니라, 여러 캐릭터가 동등한 비중으로 얽히며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구성 방식을 말합니다. 머니백은 전형적인 앙상블 캐스팅 구조를 가진 영화입니다.
엄마 수술비 때문에 돈이 절실한 편의점 알바생 민재(김무열), 보직 정지를 당하고 빼앗긴 총을 돌려받으려는 최영사(박희순), 불법 도박판을 쥐락펴락하는 사채업자 백사장(이경영), 오랜 은퇴 끝에 다시 작업을 의뢰받은 킬러 박(이경영), 그리고 불법 선거 자금이 필요한 전직 조직폭력배 출신 국회의원 문상열까지. 이 다섯 축이 '돈 가방'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물고 물리면서 이야기가 굴러갑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이경영 배우의 킬러 연기였습니다. 이 배우가 이런 코믹한 결의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걸 솔직히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생각보다 잘 어울렸고, 오히려 진지한 얼굴로 실수를 연발하는 장면들이 더 웃겼습니다.
머니백의 장르는 블랙코미디(Black Comedy)에 가깝습니다. 블랙코미디란 범죄, 폭력, 사회 부조리 같은 어두운 소재를 웃음의 재료로 쓰는 장르를 말합니다. 불법 도박, 사채, 불법 선거 자금이라는 묵직한 소재를 깔아두고, 그 위에서 캐릭터들이 허둥대는 모습을 보여주는 방식이 이 장르의 특성과 맞아 떨어집니다.
코미디 연출, 억지스럽다고 볼 수도 있다
이 지점에서 시각이 나뉜다고 봅니다. 영화의 서사가 지나치게 우연에 기대고 있다는 의견도 있는데, 저는 그 평가가 완전히 틀리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택배 하나가 옆집으로 잘못 배달되면서 총이 엉뚱한 사람 손에 넘어가고, 거기서 도미노가 시작된다는 설정은 솔직히 억지스러운 면이 있습니다.
플롯 디바이스(Plot Device)라는 표현을 쓰자면, 여기서 플롯 디바이스란 이야기를 전진시키기 위해 작가가 의도적으로 끌어다 쓰는 장치를 의미합니다. 머니백의 잘못 배달된 택배, 엉뚱하게 손에 쥐어지는 돈 가방 같은 요소들이 이에 해당합니다. 이 장치들이 너무 반복적으로 쓰인다고 느끼는 분들에게는 영화 전체가 어이없게만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보면, 이 우연들이 꽤 정교하게 연결된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긍정적인 쪽에 더 가깝습니다. 하나의 큰 판을 짜고 그 안에서 여러 캐릭터가 각자의 이유로 달려드는 구조 자체는 나름 잘 설계됐다고 봤습니다. 국내 코미디 영화의 장르적 완성도를 평가하는 시각에서, 한국영화진흥위원회가 분석한 2010년대 국내 장르 코미디 영화의 흥행 특성에 따르면 캐릭터 중심의 우연적 사건 전개가 관객 몰입도를 높이는 주요 요소 중 하나로 꼽힙니다(출처: 한국영화진흥위원회).
코미디 요소가 조금 올드하게 느껴진다는 점은 제 경험상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2018년 작품이다 보니 지금 기준으로 보면 개그의 결이 조금 묵직하게 느껴지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그걸 단점으로 볼 수도 있지만, 어떤 분들은 그 올드한 감각이 오히려 정겹다고 느끼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서민공감, 오정세라는 존재
이 영화에서 저를 가장 오래 붙잡은 건 사실 주인공 민재도, 킬러 박도 아니었습니다. 택배 기사로 등장하는 오정세 배우였습니다. "나도 나도 먹고 좀 삽시다!"라는 대사 한 줄이 제 안에 꽤 오래 남았습니다. 공감이 됐다기보다는, 너무 공감이 돼서 좀 씁쓸했습니다.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라는 개념으로 보면, 캐릭터 아크란 한 인물이 이야기 속에서 어떤 변화나 성장, 혹은 몰락을 겪는 서사적 곡선을 말합니다. 오정세가 연기한 택배 기사는 캐릭터 아크가 거의 없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열심히 살다가 온갖 봉변을 당하고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퇴장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에서 가장 현실적인 인물입니다.
민재에 대해서도 비슷한 감상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있을 텐데, 저는 개인적으로 민재보다 오정세 배우의 역할이 더 불쌍하게 느껴졌습니다. 민재는 그래도 결말에서 뭔가를 얻습니다. 택배 기사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나 싶을 정도로 박복하게 끝납니다.
이 지점이 이 영화를 단순한 오락물로만 볼 수 없게 만드는 부분입니다. 돈이라는 소재가 사람을 어떻게 움직이게 하는지, 그리고 그 판에서 서민은 어떤 자리에 놓이는지를 웃음 뒤에 살짝 담아두는 방식이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가계 부채와 생활고가 개인의 선택에 미치는 영향은 꾸준히 연구되어 왔으며, 한국은행이 발표한 자료에서도 저소득 가구일수록 비공식 금융(사채 등)에 의존하는 비율이 높다는 점이 확인됩니다(출처: 한국은행).
이 영화에서 등장인물들이 돈 앞에서 보이는 행동들, 그러니까 사채를 쓰고, 도박판에 뛰어들고, 불법에 손을 대는 선택들이 단순히 우스운 해프닝으로만 읽히지 않는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서민의 입장에서 보면 어느 순간 그 캐릭터들이 이해가 됩니다. 물론 저도 그 상황에서 저랬을 거라고는 확신하지 못하지만, 적어도 이해는 됐습니다.
이 영화가 다루는 핵심 구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돈이라는 하나의 소재를 중심으로 악인, 서민, 중간 캐릭터가 얽히는 다층적 갈등 구조
- 우연을 반복적으로 활용해 사건을 연결하는 플롯 디바이스 중심의 서사
- 블랙코미디 장르 특성상 웃음 뒤에 현실 비판을 담는 연출 방식
- 앙상블 캐스팅으로 단일 주인공 없이 여러 캐릭터가 동등하게 이야기를 끌고 가는 구성
정리하면 머니백은 영리하게 만들어진 영화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고, 억지스럽다고 느끼는 분들도 있습니다. 둘 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저는 두 시각 사이 어딘가에 있습니다. 비 오는 날 가볍게 보기에는 충분히 좋고, 오정세 배우의 대사 하나가 오래 남는다는 것만으로도 한 번 볼 가치는 있다고 봅니다. 킬러 박의 연기가 궁금하신 분이라면 풀 버전으로 꼭 보시길 권합니다. 예고편보다 본편에서 훨씬 웃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