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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아침 출근 도장 찍고, 시키는 일 하고, 눈치 보다 퇴근하는 삶. 저도 한동안 그 쳇바퀴 안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본 영화 한 편이 묘하게 머리에 남았습니다. 제목은 '회사원'. 처음엔 오피스 코미디쯤 되는 줄 알았습니다. 전혀 아니었습니다.

    평범한 직장인의 외피를 두른 청부살인 조직

    영화 '회사원'은 2012년 10월에 개봉한 한국 액션 느와르(noir) 장르 작품입니다. 느와르란 어두운 분위기와 도덕적 모호함을 특징으로 하는 범죄 장르를 뜻하는데, 쉽게 말해 선과 악의 경계가 흐릿한 세계를 그린 영화입니다. 임상윤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주연은 소지섭과 이미연이 맡았습니다.

    이 영화의 설정이 꽤 독특합니다. 17층짜리 건물 안에 위치한 회사는 겉으로는 제조업체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살인 청부를 수행하는 조직입니다. 실적 평가, 신입 교육, 사수 제도, 상사와의 갈등, 야유회까지 전형적인 한국 대기업 문화를 그대로 가져다 붙여놨습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데, 이 설정이 단순한 장치가 아닙니다. 킬러 조직의 운영 방식이 일반 회사와 구별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묘한 불쾌감이 올라옵니다. 웃어야 할지 섬뜩해야 할지 모를 그 감각이 영화 전반에 깔려 있습니다.

    주인공 형도는 10년 넘게 이 조직에서 일해온 베테랑 킬러입니다. 그는 총기를 반납하고 보고서를 쓰고 사수에게 질책을 받습니다. 신입 직원 훈이는 꿈도 없이 알바를 전전하다 이 조직에 들어오게 되고, 형도는 그를 해고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여기서 '해고'는 곧 죽음을 의미하죠. 저는 이 구조가 영화가 말하려는 핵심이라고 봤습니다. 조직의 논리가 인간을 어떻게 도구화하는지, 그 폭력성을 우리가 얼마나 일상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비틀어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소지섭의 연기, 그리고 영화가 선택한 서사 방식

    일반적으로 소지섭은 '간지 배우'라는 이미지로 소비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도 솔직히 처음엔 그냥 소지섭 멋진 장면 모음집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보니 이건 좀 달랐습니다. 물론 비주얼적으로 압도되는 장면이 많기는 합니다만, 그의 연기는 단순한 외형 소비로 끝나지 않습니다.

    형도라는 캐릭터는 카타르시스(catharsis)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습니다. 카타르시스란 쌓인 감정이 외부로 분출되며 해소되는 경험을 뜻하는데, 형도는 그것을 철저히 억압한 채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대사가 거의 없는 장면에서도 눈빛 하나로 심리 상태를 전달하는 방식은 상당히 절제된 연기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미니멀리즘적 연기는 오히려 더 집중해서 봐야 하고, 그만큼 감정이 천천히 스며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미연은 오랜만에 복귀한 스크린이었는데, 상처받은 인물의 감정선을 차분하게 끌고 갑니다. 두 배우의 조합이 예상 이상으로 잘 맞았습니다. 반면 제국의 아이들 출신 김동준이 신입 킬러 역할로 등장하는데, 소지섭과 같은 화면에 서면 존재감이 옅어지는 게 아쉬웠습니다. 감독이 소지섭에게 많은 것을 몰아줬다는 인상은 솔직히 지울 수 없습니다.

    영화의 미장센(mise-en-scène)도 주목할 만합니다. 미장센이란 화면 안에 배치된 배우, 조명, 세트, 색감 등 모든 시각적 요소를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회사원'에서는 전반적으로 채도를 낮춘 회색빛 도시 배경과 실내의 차가운 조명이 반복되는데, 이것이 형도의 감정적 공허함을 시각적으로 뒷받침합니다. 색 하나, 조명 하나가 허투루 쓰인 게 없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이 영화가 가진 주요 서사 장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청부살인 조직을 일반 기업처럼 묘사해 한국 직장 문화를 풍자
    • 사수와 신입의 관계를 통해 조직 내 인간적 유대와 배신을 대비
    • 킬러가 인간성을 회복하는 과정을 미연이라는 인물을 통해 촉매
    • 형도의 마지막 선택을 통해 '진짜 퇴직'의 의미를 질문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한국 영화의 느와르 계보를 살펴보면, 이 장르는 꾸준히 관객의 지지를 받아왔습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2010년대 초반 한국 액션 느와르 장르 영화는 평균 관객 동원력이 멜로나 코미디 장르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성장했습니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그만큼 이 장르에 대한 관객의 기대치도 높습니다.

    일반적으로 느와르 영화는 어둡고 폭력적인 장면이 많아 메시지가 약하다는 선입견이 있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회사원'을 보고 나서는 그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이 영화는 액션의 밀도보다 인물의 내면 서사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전개가 느리다고 느끼는 분도 있겠지만, 저는 그 느린 호흡이 오히려 형도의 무게를 전달하는 방식이라고 봤습니다.

    영화의 내러티브 구조(narrative structure), 즉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을 보면 기승전결이 매우 정직합니다. 이 정직함이 때로는 예측 가능하다는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반전의 쾌감을 기대하고 보면 실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가 목표로 한 것이 반전이 아니라 감정의 축적이라면, 충분히 그 목적을 달성했다고 봅니다.

    한국 직장인의 번아웃(burnout) 문제는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번아웃이란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정서적, 신체적으로 소진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국내 직장인의 상당수가 직무 소진감을 경험하고 있으며, 이직 충동과 심리적 탈출 욕구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출처: 고용노동부). '회사원'은 그 감각을 극단적인 설정으로 증폭시켜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맨날 출퇴근을 반복하다 이 영화를 보면, 형도의 결단이 그저 스크린 속 이야기로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결국 '회사원'은 소지섭 팬에게는 두말할 필요 없는 필관람작이고, 한국 사회의 조직 문화에 피로감을 느끼는 분들에게는 묘한 공감과 해방감을 동시에 주는 영화입니다. 단순히 멋진 킬러 이야기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직장인의 고독과 탈출 욕망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습니다. 보고 나서 형도의 마지막 눈빛이 머릿속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면, 이 영화가 제대로 된 겁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b7xSsfCHsX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