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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홍진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 황해, 러닝타임이 무려 140분이 넘습니다. 저는 사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 개그콘서트의 '황해' 코너를 먼저 알았습니다. 조선족 말투를 따라 하던 그 개그 코너가 워낙 재밌어서, 오히려 영화 자체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보게 됐는데, 예전에 구로 쪽에서 일하면서 옆 동네 대림동을 자주 지나쳤던 기억이 떠오르며 생각보다 훨씬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줄거리 —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한 대륙 횡단
황해의 줄거리는 단순합니다. 중국 연변의 택시 기사 구남이 빚을 갚기 위해 브로커 면정학의 제안을 받아들여 한국으로 밀입국, 타깃 한 명을 제거하러 서울로 향하는 것이 시작입니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 도착하니 누군가 이미 먼저 손을 써버렸고, 구남은 계획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휘말리게 됩니다.
여기서 영화가 주목하는 건 '청부살인'이라는 자극적 소재 자체가 아닙니다. 청부살인이란 돈을 받고 타인을 살해하는 계약 범죄를 말하는데, 황해는 이 구조를 빌려 밑바닥 인간이 생존을 위해 어디까지 몰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데 집중합니다. 구남이 조건을 받아들인 이유가 '악'이 아니라 '궁핍'이라는 점이 영화를 단순한 범죄물과 다르게 만드는 지점입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밀입국 장면이었습니다. 인권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 처절한 과정이 화면에 그대로 담겨 있었는데, 나홍진 감독이 연변에서 한 달간 배낭여행을 하며 현지를 직접 확인한 뒤 연출한 장면이라 그런지 어딘가 다큐멘터리처럼 생생했습니다. 실제로 대림동을 지나다닐 때 느꼈던 그 묘한 긴장감이 스크린 안에도 고스란히 살아 있었습니다.
밀항, 즉 불법으로 국경을 넘는 행위가 이 영화에서는 단순한 설정이 아니라 구남이 처한 계급적 한계를 상징합니다. 합법적인 방법으로는 이 나라에 발을 들일 수 없는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이죠.
피카레스크 — 악인들이 주인공인 이유
황해는 피카레스크(Picaresque) 장르로 분류됩니다. 피카레스크란 도덕적으로 선하지 않은 인물, 즉 악인이나 범죄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해 사건을 이끌어가는 서사 방식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영웅이 아닌 악당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펼쳐지는 구조입니다. 구남, 면정학, 김태원 모두 법 밖에 있는 인물들이고, 이 영화 안에는 순수하게 선한 사람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장르적 선택이 당시로선 꽤 신선했습니다. 2010년대 초반 한국 상업영화에서 주인공이 도덕적 면죄부 없이 범죄를 저지르는 구조는 흔하지 않았거든요. 제 경험상 그 시기 한국 범죄 영화는 대부분 악당과 싸우는 정의로운 주인공 구도였는데, 황해는 그 공식을 거부했습니다.
피카레스크 구조가 이 영화에서 특히 효과적인 이유는 조선족이라는 소재와 맞물리기 때문입니다. 당시 한국 사회에서 조선족은 범죄와 연결된 부정적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저도 솔직히 그런 시선을 갖고 있었고요. 그런데 영화는 그 이미지를 부수지도, 강화하지도 않습니다. 대신 그들이 왜 그 자리에 있을 수밖에 없었는지를 보여줍니다. 구남을 보면서 '저건 나쁜 사람'이라고 단정하기가 어렵습니다. 그게 이 영화의 가장 불편하고도 솔직한 지점이었습니다.
- 구남: 빚과 아내를 찾기 위해 살인 의뢰를 받아들인 택시 기사
- 면정학: 연변을 장악한 인간 브로커. 폭력이 삶의 방식인 인물
- 김태원: 청부살인을 발주한 실질적 배후. 가장 안전한 자리의 가장 위험한 인물
이 세 인물이 각자의 생존 논리로 충돌하며 영화는 전개됩니다. 어느 한 명이 완전한 피해자도, 완전한 가해자도 아닌 구조가 황해를 단순한 액션 영화와 다른 층위에 올려놓습니다. 피카레스크 장르가 가진 도덕적 불편함을 나홍진 감독은 그대로 살렸습니다(출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
연기력 — 김윤석과 하정우, 그 연기 배틀의 실체
황해에서 가장 논란 없는 부분을 꼽으라면 단연 배우들의 연기력입니다. 특히 두 주연 김윤석과 하정우의 조합은 나홍진 감독의 전작 추격자에서 이미 검증된 조합이었는데, 황해에서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폭발합니다.
하정우가 연기한 구남은 이른바 '도망자 연기'의 교과서로 불릴 만합니다. 도망자 연기란 쫓기는 캐릭터가 느끼는 공포, 피로, 절박함을 신체 전체로 표현하는 연기 방식을 말하는데, 하정우는 이 모든 감정을 대사 없이 눈빛과 숨소리, 달리는 자세 하나로 전달합니다. 제가 보면서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전작 추격자에서의 인상이 강해서 비슷한 결을 예상했는데, 구남은 완전히 다른 캐릭터였습니다.
반면 김윤석이 연기한 면정학은 공포스러운 인물입니다. 실제 연변 사람도 동포냐고 물어봤다는 후일담이 있을 만큼 완벽한 조선족 억양과 제스처를 구현했습니다. 면정학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이상하게 화면의 온도가 내려가는 느낌이 납니다. 이 캐릭터가 무서운 건 폭력성 때문만이 아니라, 그 폭력이 그에게 너무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두 배우의 연기를 뒷받침하는 건 나홍진 감독의 연출 방식입니다. 카메라는 주요 장면에서 핸드헬드(hand-held) 기법을 적극 활용합니다. 핸드헬드란 카메라를 삼각대 없이 손에 들고 촬영하는 방식으로, 화면이 흔들리며 현장감과 긴박감을 극대화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추격 장면에서 이 기법이 집중적으로 사용되는데, 쫓기는 구남의 시점이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이됩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KOFIC).
자주 묻는 질문
Q. 황해 영화가 추격자보다 재미없다는 평이 많은데 실제로 그런가요?
A.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추격자에 비해 러닝타임이 상당히 길어지면서 중반부에 몰입감이 흐트러지는 지점이 있습니다. 추격자가 단선적이고 압축적인 구조였다면, 황해는 여러 인물의 이야기가 교차하다 보니 속도감이 다릅니다. 같은 감독, 같은 주연임에도 체감 긴장감 차이가 꽤 납니다.
Q. 황해 영화에서 구남이 왜 엄지손가락을 가져가려 하나요?
A. 브로커 면정학이 청부살인의 증거물로 타깃의 손가락을 가져오라고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살인을 완료했다는 물리적 증거를 요구한 것인데, 이 설정 자체가 이 세계의 잔혹함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구남으로서는 돈을 받으려면 반드시 챙겨야 하는 조건이었습니다.
Q. 황해가 피카레스크 장르라고 하는데, 쉽게 말해 어떤 영화인가요?
A. 선한 주인공이 악당을 무찌르는 구조가 아니라, 주인공 자체가 도덕적으로 흠이 있는 인물로 구성된 영화입니다. 구남도, 면정학도 법 밖의 사람들이고 관객은 이들 중 누군가를 응원해야 하는 불편한 위치에 서게 됩니다. 그 불편함이 황해의 장르적 매력입니다.
Q. 황해 영화에서 조선족 묘사가 너무 편향된 거 아닌가요?
A. 이 부분은 개인마다 다르게 볼 수 있습니다. 저도 대림동을 오가며 조선족에 대한 부정적 인상을 갖고 있었는데, 영화를 보면서 그 이미지 이면에 있는 생존의 처절함도 느꼈습니다. 다만 솔직히 말하면 영화를 보고 나서도 조선족이 무섭다는 감각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습니다. 영화가 인식을 바꾸기보다는 복잡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결론
황해는 범죄 스릴러를 좋아하신다면 반드시 봐야 할 작품이지만, 추격자와 동등한 긴장감을 기대하면 실망할 수 있습니다. 러닝타임이 길고 구조가 복잡해 중반부에 피로감이 쌓이는 것은 분명한 단점입니다. 그러나 그 아쉬움을 상당 부분 커버하는 것이 김윤석과 하정우의 연기력이고, 조선족의 삶을 직접 발로 뛰며 담아낸 나홍진 감독의 현장 밀도입니다.
개그 코너로 먼저 접하고 나중에 영화를 봤던 제 입장에서는, 웃음의 소재가 됐던 그 말투와 생김새가 사실은 이런 생존의 무게를 지고 있었구나 싶어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범죄 스릴러를 찾고 계신다면 추격자를 먼저 보고, 그 연장선에서 황해를 보시길 권합니다. 그 순서가 두 작품을 가장 제대로 즐기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