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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이 가까워질 때마다 저는 유독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얼마 전 파주 전망대에 갔다가 학도병이 어머니에게 쓴 편지 앞에서 한참을 발걸음을 떼지 못했습니다. 중고등학생 나이의 아이들이 쓴 그 편지를 읽으면서, 영화 '포화 속으로'가 다시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그 영화가 담은 이야기가 단순한 창작이 아니라는 걸 그 자리에서 새삼 실감했습니다.
학도병과 포항전투, 우리가 잘 모르는 실화의 무게
1950년 8월, 북한군 766부대 300여 명이 포항으로 내려올 때 그 앞에 선 건 국군도 미군도 아니었습니다. 총 한 번 제대로 쥐어본 적 없는 71명의 학도병이었습니다. 여기서 학도병이란 정규 군사 훈련을 받지 않은 채 자원 또는 징집되어 전선에 투입된 10대 학생 병사를 말합니다. 이들은 훈련 기간도, 충분한 탄약도, 식량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11시간 30분 동안 포항여중 일대를 지키며 20만 명 이상이 대피할 시간을 벌어줬습니다(출처: 국가보훈부).
저는 파주 전시관에서 그 편지를 읽으면서 이 숫자들이 얼마나 무거운지를 체감했습니다. "어머님, 이곳에는 이제 저희 71명뿐입니다." 그 문장 하나가 전쟁의 규모나 전술보다 훨씬 크게 가슴을 눌렀습니다. 역사책에서 배운 숫자가 아니라 실제 아이가 쓴 문장이었으니까요.
당시 낙동강 방어선(Nakdong River Defense Line)은 한국전쟁의 가장 중요한 분수령이었습니다. 낙동강 방어선이란 1950년 8월부터 9월까지 국군과 유엔군이 최후의 거점으로 삼았던 방어선으로, 이 선이 뚫렸다면 한반도 전체가 북한군 수중에 넘어갈 수도 있었습니다. 포항은 그 방어선의 측면을 보호하는 전략 요충지였기에, 학도병들이 지킨 그 11시간이 전쟁의 흐름 자체를 바꿔놓은 셈입니다.
할아버지께서도 한국전쟁에 참전하셨고, 지금은 현충원에 잠들어 계십니다. 그래서인지 전쟁을 소재로 한 콘텐츠를 볼 때 저는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편입니다. 이 이야기가 단순히 '옛날 일'이 아니라 실제로 제 가족의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국책영화의 그림자, '포화 속으로'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이 영화를 그냥 좋은 전쟁 영화로 보면 된다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조금 복잡한 시선으로 봤습니다. '포화 속으로'는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에 맞춰 전략적으로 제작된 작품입니다. 이 구조는 과거 국책영화(State-Sponsored Film)의 틀과 꽤 닮아 있습니다. 국책영화란 정부 또는 국방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특정 이념이나 역사 인식을 강화하기 위해 제작된 영화를 가리킵니다. 임권택 감독의 1970년대 전쟁 영화들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포화 속으로'에는 그 전형적인 캐릭터들이 그대로 등장합니다.
- 어떤 희생을 치러서라도 학도병을 구하려는 정의로운 대위 강석대
- 부모의 원수를 갚겠다는 일념으로 싸우는 반항아 갑조
- 조국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가득 찬 대장 장범
- 전쟁광에 가깝게 그려지는 북한군 진격대장 박무랑
이 구도는 분명히 70년대 전쟁 영화의 문법을 답습하고 있습니다. 잦은 슬로모션, 감상적인 배경음악, 과도한 비장미는 현대 관객 입장에서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런 상투적인 구성이 오히려 그 시대 학도병들이 처했던 감정, 즉 두려움과 사명감이 뒤엉킨 순수한 감정과 묘하게 맞닿아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가 직접 영화를 다시 봤을 때, 장범이 어머니를 향한 편지를 쓰는 장면은 파주에서 봤던 실제 편지와 겹쳐지면서 오랫동안 여운이 남았습니다.
전투 장면만큼은 상당히 실감납니다. 박격포와 바주카포 발사 장면, 건물이 무너지는 시가전 묘사는 현재 기준으로도 박진감이 있습니다. 여기서 바주카포란 보병이 휴대하며 발사하는 대전차 로켓 발사기로,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 탱크에 대응하는 주요 무기 중 하나였습니다. 다만 12월에 여름 장면을 촬영하는 바람에 논이 이미 추수된 상태로 등장하는 옥에 티는 영화 전체의 고증 의지에 대한 의문을 남기기도 합니다.
전쟁영화가 전해야 할 것, 그 경계에서 '포화 속으로'가 서 있는 자리
전쟁영화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두 가지 시각이 뚜렷하게 나뉩니다. 영웅서사(Heroic Narrative), 즉 국가를 위해 희생한 군인들의 무용담을 통해 애국심을 고취하는 방식이 있는 반면, '태극기 휘날리며'나 '웰컴 투 동막골'처럼 전쟁의 비극과 휴머니즘을 전면에 내세워 반전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도 있습니다. 영웅서사란 전쟁 속 개인의 용기와 희생을 중심으로 서사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공동체 정체성 강화에 효과적이지만 때로는 전쟁의 참혹함을 희석시킨다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포화 속으로'는 그 경계 어딘가에 서 있습니다. 영화 중반부, 장범이 인민군 속에서 자신과 같은 어린 학생을 발견하는 장면은 꽤 의미 있는 시도입니다. 적이라고 생각했던 존재가 똑같이 어머니를 부르는 아이라는 사실, 그 순간만큼은 영화가 단순한 적아 구분을 넘어섭니다. 하지만 그 이후 서사가 다시 영웅적 희생의 공식으로 빠르게 수렴해버리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학도병 전투에 관한 역사적 기록은 국가보훈부와 전쟁기념관 등을 통해 공식적으로 보존되어 있습니다(출처: 전쟁기념관). 그 기록을 접하고 나면, 영화의 과장이나 상투성이 오히려 아쉽게 느껴집니다. 실화 자체가 이미 그 어떤 극적 장치보다 강렬하기 때문입니다.
파주 전망대에서 학도병의 편지를 읽던 그 순간이 자꾸 생각납니다. 글씨도 서투른 편지지에 담긴 "어머님 보고 싶습니다" 한 줄이, 어떤 전투 장면보다 더 강하게 전쟁의 실체를 전해줬습니다. '포화 속으로'가 완벽한 영화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학도병이라는 이름을 모르고 살아가는 분들에게 그 이야기를 처음으로 전달한다는 점에서는 분명 의미가 있습니다. 현충일을 앞두고,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전쟁기념관 자료나 국가보훈부 기록을 한 번이라도 찾아보신다면, 영화 한 편의 역할로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