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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포스터를 처음 봤을 때부터 이상하게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60대 여성 킬러라는 설정 하나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끌렸는데, 이혜영이라는 배우가 그 자리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개봉 전부터 기대가 컸습니다. 근데 막상 보고 나서는 솔직히 조금 속상했습니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이겠지만, 이 배우들을 데리고 좀 더 잘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싶었거든요.

    이혜영의 조각, 기대 이상이었던 원작 캐스팅

    파과는 구병모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입니다. 원작 소설은 출간 당시부터 독자층 사이에서 화제가 됐는데, 주인공 조각이라는 캐릭터의 내면 묘사가 특히 강렬하다는 평이 많았습니다. 원작 IP(지식재산권)란 출판,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미디어로 확장 가능한 원본 콘텐츠 자산을 말하는데, 파과는 뮤지컬로도 먼저 제작될 만큼 그 IP 가치가 이미 검증된 작품이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영화 개봉 전부터 이혜영의 캐스팅이 딱 맞는다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저도 처음 캐스팅 소식을 들었을 때 이건 진짜 잘 골랐다고 생각했습니다. 40년간 살인을 업으로 삼아온 킬러가 몸이 하나씩 고장 나면서 겪는 감정의 균열, 그 감정의 두께를 표현할 수 있는 배우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혜영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숨소리 하나에서도 세월의 무게가 느껴졌고, 자연스럽게 스며든 백발과 선명한 주름이 캐릭터를 억지스럽지 않게 채웠습니다. 딕션(Diction)이란 배우가 대사를 전달하는 발음과 강약의 정확도를 뜻하는데, 이혜영의 딕션은 감정을 직접 얹어 전달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조각이라는 이름은 극 중 짐승의 발톱을 뜻하는데, 그 이름에 걸맞은 존재감이었습니다.

    액션 연출과 투우라는 캐릭터, 예상 밖의 포인트

    제가 직접 보고 나서 가장 예상 밖이었던 건 액션이었습니다. 민규동 감독은 그간 액션 장르를 주력으로 해온 감독이 아닙니다. 그래서 조각의 심리 위주로 잔잔하게 흘러갈 거라고 예상했는데, 실제로는 꽤 스타일리시한 액션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비녀를 활용한 방역 장면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여기서 방역이란 극 중 킬러 세계에서 쓰이는 은어로, 타겟을 제거하는 행위를 벌레 퇴치에 빗댄 표현입니다. 그 장면들 사이사이에 드라마가 절묘하게 삽입되어 있어서, 단순한 액션 스펙터클이 아니라 조각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구조로 짜여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투우라는 캐릭터도 주목할 만합니다. 원작에서는 조각 중심의 서사가 강했지만, 영화는 투우를 사실상 공동 주연급으로 끌어올렸습니다. 분노로 포장된 집착이라는 표현이 이 캐릭터를 잘 설명하는데, 김성철은 복수라 하기엔 감정이 너무 많고 증오라 하기엔 뭔가 복잡한 눈빛을 꽤 설득력 있게 표현했습니다. 어쩌면 투우는 조각이 만들어낸 또 다른 조각인지도 모릅니다.

    파과에서 주목해야 할 연기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이혜영의 신체 언어와 딕션 — 대사보다 숨소리로 더 많은 걸 전달
    • 김성철의 눈빛 연기 — 분노와 갈망이 혼재된 복합적 감정 표현
    • 김무열과 김강우의 존재감 — 한 스크린에서 동시에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값어치가 있었습니다

    기대와 현실 사이, 완성도에 대한 솔직한 생각

    시원하게 수박을 썰어 먹으면서 에어컨 틀어놓고 편안하게 봤는데, 다 보고 나서 기분이 조금 묘했습니다. 속상하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았습니다. 이 배우들을 데리고 좀 더 잘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싶었고, 결국 이건 감독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러티브(Narrative)란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식과 흐름의 설계를 의미하는데, 파과의 내러티브는 원작과 뮤지컬의 톤이 너무 강하게 남아 있어서 영화 고유의 리듬을 찾지 못한 부분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감독이 고민을 많이 했다는 흔적은 분명히 보였지만, 그 고민이 온전히 화면으로 옮겨지지는 못한 느낌이었습니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KOFIC)에 따르면 2024년 한국 영화 관객 수는 팬데믹 이전 대비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황입니다(출처: 한국영화진흥위원회). 이런 시장 환경에서 파과 같은 장르 실험은 의미가 있지만, 흥행이라는 현실 앞에서는 아쉬움이 남는 결과였습니다.

    또한 구병모 작가의 원작 소설은 2013년 출간 이후 문학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인정받은 작품으로, 국립중앙도서관 사서 추천 도서로도 선정된 바 있습니다(출처: 국립중앙도서관). 그만큼 원작의 무게가 컸고, 영화가 그 무게를 감당하기에 버거웠던 부분이 있었을 것입니다.

    결국 파과는 강력하게 추천하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외면할 수도 없는 영화입니다. 이혜영이라는 배우가 이런 캐릭터에 도전했다는 것 자체가 한국 영화에서 드문 일이고, 그 도전만으로도 한 번쯤 극장에서 확인해볼 가치는 충분합니다. 다만 기대치를 조금 낮추고 가시는 걸 권해드립니다. 너무 큰 기대를 안고 가면, 저처럼 수박 먹다가 괜히 씁쓸해질 수 있으니까요.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C6uX4RC7jj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