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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한국 영화로 수학을 소재로 한 작품이 나올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이과 출신으로 수학에 남다른 애정이 있다 보니, 수학 영화 하면 늘 헐리우드 작품만 떠올렸거든요. 그래서 개봉 소식을 접했을 때 반가움 반, 걱정 반이었습니다. 과연 우리 정서로 수학이라는 소재를 어떻게 풀어낼까 싶었습니다.
탈북자 수학자와 수포자의 만남, 그 배경
영화의 구조는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명문 기숙 고등학교에 전국 상위 1% 학생들이 모여 있고, 그 안에서 학원도 과외도 없이 학교 수업만으로 버텨온 한지우는 수학 성적이 240명 중 238등, 사실상 꼴찌권에 머물러 있습니다. 담임 교사는 이미 "전학을 고려해보라"는 말을 꺼낼 정도입니다.
여기서 핵심 구도가 만들어집니다. 경비원으로 일하는 이학성은 탈북자 출신의 수학 천재입니다. 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 이 설정 자체가 굉장히 영리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천재를 그냥 교수나 연구자로 두면 이야기에 긴장감이 없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 숨어 있어야, 그 천재성이 드러나는 순간에 카타르시스가 생기거든요.
영화는 이 만남이 우연처럼 보이지만 필연적으로 느껴지도록 섬세하게 쌓아 올립니다. 지우가 기숙사 소주 심부름 사건으로 한 달간 기숙사에서 쫓겨난 날 밤, 이학성의 순찰 중에 두 사람이 마주치게 됩니다. 그리고 지우가 졸다 흘린 수학 과제지를 이학성이 밤새 풀어놓는 장면에서 영화는 본격적으로 달라집니다.
흥미로운 건 이 학교의 수학 문제 난이도입니다. 극 중 묘사에 따르면 60점만 받아도 상위 1%에 든다는 수준으로, 선생님들도 완벽히 풀기 어렵다고 할 정도입니다. 그걸 경비원이 100점을 맞힌 거니 충격이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국 수학 교육의 문제를 짚다
이 영화가 단순한 감동 스토리로 끝나지 않는 이유는, 한국 수학 교육 구조에 대한 비판이 영화 전반에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수학 교육은 개념 이해와 사고력 신장을 목표로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실제 학교 현장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이과 출신으로 고등학교를 거쳐봤지만, 수업 시간은 사실상 입시 문제 풀이 훈련의 연속이었습니다.
영화 속 장면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은 이미 학원에서 다 배워왔다는 전제하에 수업을 진행하고, 학원이나 고액 과외 없이는 따라가기 버거운 구조가 당연하게 그려집니다. 이는 우리나라 수학 교육이 수학적 사고력(Mathematical Thinking)보다 문제 해결 속도와 정답률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는 현실을 정직하게 반영한 것입니다. 여기서 수학적 사고력이란 단순히 공식을 암기해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논리적 구조를 스스로 구축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실제로 한국교육과정평가원(KICE)의 수능 수학 출제 기조를 보면, 최근 몇 년간 단순 계산보다 추론 능력과 문제 해결 과정을 평가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고는 하지만(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입시 현장에서 체감하는 변화는 여전히 더딥니다.
이학성이 지우에게 첫 수업에서 제시하는 문제는 역설적이게도 초등학생 수준의 삼각형 넓이 구하기입니다. 그런데 지우가 공식대로 풀어낸 정답이 사실은 출제 오류였다는 걸 이학성이 집어냅니다. 이 장면이 영화 전체의 핵심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학성의 말처럼 "답을 맞추는 데만 욕심을 내면 문제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수학에서 증명(Proof)이라는 개념이 영화 전반에 걸쳐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증명이란 어떤 명제가 참임을 논리적 단계를 통해 확인하는 과정으로, 단순히 답이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왜 그것이 성립하는지를 설명하는 행위입니다. 영화는 이 수학적 개념을 삶의 은유로 확장합니다.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탈북자 이학성, 자신의 실력을 증명해야 하는 지우, 두 사람의 서사가 이 단어 하나로 묶이는 구성입니다.
이학성이 원주율(π)을 피아노 음계로 변환해 연주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원주율이란 원의 지름에 대한 둘레의 비율로, 3.14159...로 이어지는 무한하고 불규칙해 보이는 수열이지만, 그것이 음악이 되는 순간 아름다움으로 다가오는 연출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도 수포자가 아닌 이과 출신임에도 그 장면에서 수학의 다른 면을 다시 보게 됐습니다.
이 영화에서 수학 교육 방식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공식 암기 중심의 교육이 문제의 본질을 볼 기회를 빼앗는다
- 정답률 경쟁 구조가 오류를 발견하는 능력을 오히려 억누른다
- 경제력에 따른 학습 격차가 교육 기회의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 수학이 입시 도구로만 소비되면서 본연의 아름다움이 사라진다
굳 윌 헌팅과 비교해보면
솔직히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제가 가장 걱정했던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었습니다. 수학 영화 하면 누구나 굳 윌 헌팅(Good Will Hunting, 1997)을 먼저 떠올립니다. 일반적으로 두 영화가 비슷한 구조라고 알려져 있는데, 제 경험상 실제로 비교해 보면 강조점이 꽤 다릅니다.
굳 윌 헌팅은 천재 청소부 윌이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는 것보다 심리적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과정에 더 많은 비중을 둡니다. MIT 복도에 적힌 수학 문제를 청소부가 풀어낸다는 설정은 인상적이지만, 수학 자체보다는 심리 치유 드라마에 가깝습니다. 반면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수학이라는 학문 자체를 좀 더 정면으로 다루려 한 흔적이 보입니다. 증명, 원주율, 삼각형 넓이의 근본 원리처럼 수학적 내용을 실제로 화면에 올려놓는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 제게는 더 반가운 영화였습니다.
두 영화가 공통적으로 선택한 설정도 흥미롭습니다. 청소부와 경비원, 학교라는 공간, 천재성이 숨겨져 있다는 구도. 이 구조가 반복되는 이유는 명백합니다. 천재성의 감동은 권위 있는 자리에서 발휘될 때보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곳에서 드러날 때 훨씬 강렬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제가 직접 영화관에서 같이 본 일행들의 반응이 반반으로 갈렸는데, 그 이유가 충분히 납득됩니다. 수학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이과 출신에게는 공감이 됐지만, 수학에 거부감이 있는 관객에게는 다소 공허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임팩트가 강한 연출보다 잔잔하게 흘러가는 방식을 선택했기 때문에, 극적 긴장감을 기대한 관객에게는 아쉬움이 남을 수 있는 영화입니다.
그럼에도 최민식 배우가 3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해 소화한 이학성 역할은 그야말로 탁월했습니다. 다변(多辯) 없이 눈빛과 침묵만으로 캐릭터의 깊이를 전달하는 장면들은 배우가 아니면 만들어낼 수 없는 밀도였습니다. 탈북자라는 무거운 배경을 품고도 지나치게 자극적으로 소비하지 않은 연출 방향도 제게는 긍정적으로 보였습니다.
수학을 소재로 한 한국 영화가 나왔다는 것 자체가 이미 의미 있는 일입니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KOFIC) 자료에 따르면 교육과 성장을 주제로 한 국내 드라마 영화 장르는 최근 몇 년간 꾸준히 관객과 소통해왔습니다(출처: 한국영화진흥위원회). 그 흐름 안에서 이 영화가 수학이라는 낯선 소재를 택하고 가족 관람이 가능한 수위로 풀어낸 것은, 상업적 선택만은 아닌 감독의 진심이 담긴 결과물로 보입니다.
이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결국 이것입니다. 정답보다 중요한 건 문제를 제대로 보는 눈이고, 그 과정을 버텨내는 태도라는 것입니다. 수학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저 역시 살면서 결과에만 집착하다 과정을 놓친 순간들이 떠올라 묘하게 마음이 걸렸습니다. 수포자에게도, 이과 출신에게도, 각자의 방식으로 무언가를 남기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한 번쯤 극장에서 만나볼 만한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