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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봉 당시 259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지만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했던 영화가 있습니다. 2016년 개봉한 김성수 감독의 <아수라>입니다. 저도 개봉 당시 극장에서 직접 봤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 화려한 캐스팅으로 이 정도 흥행이라니 싶었거든요.

     

    천만 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인 캐스팅

    황정민, 정우성, 주지훈, 곽도원. 이 이름들만 보고 극장 티켓을 예매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저도 그 중 한 명이었고, 개봉 전부터 꽤 들떠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인구 48만 도시 안남시를 배경으로 합니다. 재개발 이권을 장악하기 위해 조직폭력과 결탁한 시장 박성배, 그 밑에서 불법을 대신 처리하며 말기암 아내의 치료비를 버는 형사 한도경, 그리고 점차 타락해가는 도경의 파트너 선모. 이 세 축이 영화를 이끌어 갑니다.

    <아수라>는 느와르(noir) 장르에 속합니다. 느와르란 도덕적으로 타협한 인물들이 비극적 결말을 향해 치닫는 어두운 범죄 서사를 의미합니다. 헐리우드 고전에서 시작된 장르이지만, 한국 영화에서는 <범죄와의 전쟁>이나 <신세계>처럼 조직 범죄와 권력 부패를 다루는 방식으로 변용되어 왔습니다.

    이 영화의 핵심 캐릭터 구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박성배(황정민): 재개발 이권을 위해 조폭과 결탁한 부패 시장
    • 한도경(정우성): 시장의 지시로 불법을 처리하며 검찰과 시장 사이에서 이중 첩보 활동을 하는 형사
    • 선모(주지훈): 도경을 형처럼 따르다 점차 박 시장의 충복이 되어가는 인물
    • 김차인(곽도원): 도경을 스파이로 활용하는 검찰 수사관

    이렇게 보면 캐릭터 설정 자체는 탄탄합니다. 제가 직접 여러 번 돌려보면서 느낀 건, 이 영화에서 누구 하나를 응원하거나 감정 이입을 하기가 정말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등장인물 모두가 어떤 방식으로든 더러운 손을 갖고 있거든요.

     

    스토리 구조와 연출의 빛과 그림자

    영화의 서사 구조를 들여다보면 카타르시스(catharsis)를 의도적으로 배제한 흔적이 보입니다. 카타르시스란 관객이 극 중 인물과 감정을 공유하며 긴장과 두려움을 해소하는 정화 작용을 말합니다. 상업 오락 영화 대부분이 이 카타르시스를 핵심 만족 포인트로 설계하는 반면, <아수라>는 그 쾌감을 의도적으로 차단합니다.

    실제로 제가 처음 극장에서 봤을 때 가장 불편했던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었습니다. 악당이 응징받는 장면을 기대하게 만들어 놓고, 마지막까지 통쾌함 대신 씁쓸함만 남깁니다. 그게 불편했지만, 돌이켜보면 그게 이 영화의 가장 솔직한 선택이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중반부 이후 스토리 전개가 다소 밀도를 잃는다는 느낌은 지금 다시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도경이 검찰의 이중첩자로 활동하며 박 시장과 김차인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구조는 흥미롭지만, 그 긴장감이 후반부까지 고르게 유지되지 않는다는 게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운 지점입니다.

    반면 미장센(mise-en-scène) 측면에서는 꽤 인상적인 장면들이 있습니다. 미장센이란 화면 안에 배치되는 배우, 조명, 세트, 카메라 앵글 등의 시각적 요소 전체를 아우르는 영화 연출 개념입니다. 장례식장에서 벌어지는 클라이맥스 액션 시퀀스는 조명과 공간 구성이 특히 강렬했고, 저는 그 장면만큼은 여러 번 돌려봤습니다. 한국 상업 영화에서 이 정도 밀도의 액션 연출은 흔치 않습니다.

    <아수라> 개봉 당시 국내 범죄 영화의 흥행 패턴을 살펴보면, 관객들이 선호한 작품들은 대체로 권선징악 구조를 띤 경우가 많았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이 영화가 그 기대를 정면으로 배반했다는 점이 흥행 부진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분석됩니다.

     

    저평가된 영화가 뒤늦게 재조명된 이유

    2018년, 상황이 바뀝니다. 시사 프로그램에서 실제 정치권과 조직폭력배의 유착 의혹이 보도되면서 <아수라>가 갑자기 재조명받기 시작했습니다. VOD 다운로드 수가 급증했고, 뒤늦게 손익분기점을 넘겼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저도 그 무렵 다시 한 번 다운로드해서 봤는데, 두 번째로 볼 때 이 영화가 처음보다 훨씬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스크린쿼터제(한국 영화 의무 상영 비율 제도)로 대표되는 한국 영화 생태계의 보호 아래 성장한 국내 느와르 장르가, 정작 가장 현실적인 서사를 담은 작품에서 외면받았다는 아이러니가 있습니다(출처: 문화체육관광부). 스크린쿼터제란 극장이 한국 영화를 의무적으로 일정 일수 이상 상영하도록 규정한 제도로, 국내 영화 산업 보호를 위해 시행되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높이 평가하는 건 역시 황정민 배우의 연기입니다. 박성배라는 캐릭터는 잔인하고 탐욕스럽지만 동시에 어딘가 무너지기 직전 같은 불안함이 공존하는데, 황정민은 그 두 가지를 한 얼굴에 담아냅니다. 그게 정말 대단했습니다. 다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정우성 배우의 경우 욕설 대사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장면이 몇 군데 있었고, 그건 저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이건 연기력의 문제라기보다 캐릭터와 배우 사이의 간극처럼 보였습니다. 어쩌면 이 영화가 배우들의 역량을 끝까지 다 끌어내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그 지점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아수라>를 한 번 봤는데 별로였다는 분들이 있다면, 한 번만 더 보시길 권합니다. 처음 볼 때 불편했던 그 느낌이 사실 이 영화의 가장 정직한 메시지일 수 있습니다. 통쾌함을 기대하고 보면 실망하지만, 불편함을 받아들이고 보면 꽤 오래 남는 영화입니다. 황정민, 정우성, 주지훈, 곽도원의 연기를 한 화면에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도 이 영화가 꽤 저평가받았다고 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rxftEevD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