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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편이 본편을 넘어선다는 말, 믿으시나요? 영화계에는 "본편보다 나은 속편은 없다"는 불문율이 있다고들 합니다. 저도 그 말을 꽤 오래 믿었습니다. 그런데 신의 한 수 귀수편을 보고 나서는 그 생각이 흔들렸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귀수, 바둑판 위 도장깨기 서사
영화는 훗날 귀수라 불리는 소년이 프로 바둑 기사 황동현 9단의 수발을 들며 근근이 살아가는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단순한 복수극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영화의 핵심 구조는 도장깨기 서사(한 주인공이 단계를 밟아가며 강적들을 차례로 제압해 나가는 전개 방식)에 가깝습니다. 쉽게 말해 주인공이 바닥부터 시작해 각각의 고수들을 꺾으며 성장한다는 뼈대입니다. 이 구조 덕분에 관객 입장에서는 다음 대결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고, 106분 내내 몰입이 끊기지 않았습니다.
제가 직접 보고 느낀 건데, 귀수라는 캐릭터는 말이 없고 표정도 적지만 그 절제된 연기 자체가 이야기를 대신 합니다. 황동현에게 수모를 당하고 전 재산을 들고 서울로 도망치듯 상경하는 그 장면 하나만으로도 이 아이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지 충분히 느껴집니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 내내 귀수의 본명이 공개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름 없이 역할로만 존재하는 캐릭터 설정은 느와르 장르의 전형적인 익명성 기법으로, 관객이 인물 자체보다 그 인물이 걸어가는 길에 집중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액션 느와르로서의 완성도
신의 한 수 귀수편을 바둑 영화로 보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건 상업 액션 느와르라고 봅니다. 느와르(Film Noir)란 도덕적으로 모호한 인물, 폭력, 배신이 중심이 되는 어두운 범죄 장르를 뜻하며, 한국 범죄 액션물에서 자주 차용되는 문법입니다.
이 영화에서 바둑은 스토리의 배경이자 대결의 형식일 뿐, 인생의 교훈을 설파하는 수단이 아닙니다. 오히려 바둑 용어와 룰이 액션의 언어로 치환됩니다. 속기 바둑(짧은 제한 시간 안에 빠르게 대국하는 방식)이나 맹기 바둑(눈을 가리고 머릿속으로만 돌을 놓는 훈련법), 사석 바둑(죽은 돌을 활용하는 변형 방식) 같은 설정들이 실제 맨몸 격투 장면과 자연스럽게 엮이면서 독특한 긴장감을 만들어 냅니다.
1편과 비교했을 때 액션의 밀도와 완성도가 눈에 띄게 올라갔습니다. 제 경험상 한국 범죄 액션 속편들이 전작의 스타일을 그대로 답습하다 지루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귀수편은 권상우라는 배우의 신체 능력을 전면에 배치하면서 전작과 분명히 차별화된 결을 만들었습니다.
한국 영화의 장르적 완성도와 흥행 경향을 보면, 범죄 액션 장르는 꾸준히 관객 선호도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귀수편이 그 흐름 안에서 충분히 선전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이 장르적 쾌감을 제대로 구현했기 때문이라 봅니다.
캐릭터들, 아쉽지만 매력적이다
이 영화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이 캐릭터 라인업입니다. 허일도, 잡초, 무당, 외톨이 등 각각 뚜렷한 서사와 개성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캐릭터 아키타입(Archetype), 즉 보편적 인물 유형이라는 의미인데, 이 영화는 스승형, 라이벌형, 트릭스터형 빌런을 고루 배치하면서 다양한 대결 구도를 만들어 냅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더 높은 평점을 받지 못한 이유가 여기 있다고 봅니다. 106분이라는 러닝타임 안에 이 많은 캐릭터들의 서사를 개연성 있게 펼치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잡초나 무당처럼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인물들이 충분한 배경 없이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느낌을 주는 건 사실입니다.
제가 보기엔, 이 스토리와 캐릭터들은 웹툰이나 장편 시리즈로 풀면 훨씬 빛날 수 있는 소재입니다. 각 인물의 서사를 방대하게 넓혀 그려도 충분히 통할 것 같습니다. 그만큼 캐릭터성 자체는 탄탄합니다.
귀수편에서 아쉬운 부분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복수의 대상인 황동현이 중반부에 완전히 사라져 서사의 긴장감이 분산됩니다.
- 추가 빌런들이 메인 악당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아 이야기가 느슨해지는 구간이 있습니다.
- 러닝타임의 한계로 일부 인물 관계의 감정선이 충분히 쌓이지 못한 채 결말을 맞이합니다.
라는 의견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순수 창작 시나리오만으로 이 정도 밀도를 만들어낸 것 자체가 대단하다고 봅니다. 원작 웹툰이나 소설 없이 이 정도 캐릭터층을 쌓아 올린 각본은 흔치 않습니다.
권상우, 이 영화를 가장 잘 활용한 배우
권상우 배우 하면 많은 분들이 특유의 남성미와 액션을 떠올립니다. 저 역시 그 기대를 안고 극장에 들어갔고,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 영화가 권상우를 가장 잘 활용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흥미로운 지점은 귀수라는 캐릭터가 성인으로 성장한 뒤 등장하기 때문에, 배우의 무게감이 자연스럽게 캐릭터의 연륜으로 읽힌다는 점입니다. 절에서 수련을 마치고 세상으로 나오는 장면부터 이미 그 존재감만으로 서사가 반 이상 전달됩니다.
스타 파워(특정 배우의 인지도와 호감도가 흥행에 미치는 영향력)라는 측면에서 권상우는 이 장르에서 최적의 선택이었습니다. 국내 관객들에게 그는 이미 액션 장르에서 검증된 배우이고, 그 기대치를 이 영화는 충분히 충족시켰습니다.
한국 상업 영화 시장에서 배우의 캐스팅이 흥행에 미치는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는 요소입니다. 특히 중장년층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이는 데 스타 캐스팅의 역할이 크다는 분석도 있습니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제가 직접 봤을 때, 귀수 캐릭터가 잡초를 상대하는 장면에서 느껴지는 여유로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예전 황동현에게 수모를 당하던 소년과 지금 이 사람이 같은 인물이라는 게 느껴지면서, 성장 서사의 카타르시스가 제대로 전해졌습니다.
신의 한 수 귀수편은 속편이 전작을 넘어설 수 있다는 걸 실제로 증명한 드문 사례라고 봅니다. 바둑을 전혀 몰라도 상관없습니다. 이건 철저히 장르 영화이고, 그 장르 안에서 할 일을 충실히 해낸 작품입니다. 1편을 보지 않은 분도 바로 보시기에 무리가 없고, 범죄 액션 느와르를 즐기신다면 충분히 만족하실 겁니다. 3편 소식도 기다려지는 시리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