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솔직히 저는 이 영화가 이렇게 묻혀있을 줄 몰랐습니다. JSA를 다시 들여다보다가 군 시절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왔고, 거기서 꼬리를 물다 보니 강철부대에서 눈길을 사로잡았던 SSU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2003년 개봉작 블루까지 흘러왔습니다. SSU를 배경으로 한 한국 영화라니, 이게 얼마나 희귀한 소재인지 아십니까?
SSU라는 소재, 왜 이 영화가 특별한가
SSU(Ship Salvage Unit), 우리말로는 해난구조대입니다. 여기서 SSU란 해군 소속의 특수 잠수 부대로, 침몰한 함정이나 수중 장비를 구조·인양하는 임무를 전문으로 하는 엘리트 부대를 의미합니다. UDT(수중폭파팀)와 함께 해군 특수전 계열의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곳입니다.
저는 20대 초반에 SSU 출신 형과 바다에 놀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 형이 그물망 하나 들고 혼자 어디론가 가더니 몇 시간 뒤에 조개와 물고기를 한가득 담아 돌아왔습니다. 그때 받은 충격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 형한테 SSU가 얼마나 혹독한 곳인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고, 저도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잠깐 스쳤지만 솔직히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포기했습니다.
영화 블루는 바로 그 SSU를 전면에 내세운, 당시로서는 굉장히 드문 시도였습니다. 다른 특수부대를 다룬 작품들은 종종 나왔지만 SSU를 이렇게 본격적으로 조명한 작품은 사실상 없었습니다. 실제로 제작진은 SSU 자문을 받아 훈련 방식과 장비 운용을 최대한 실제에 가깝게 담아냈습니다. 단,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 부대원은 실제와 다른 설정입니다. 현실의 SSU에는 여성 대원이 없습니다.
이 영화가 더 아쉬운 이유가 있습니다. 개봉 시기가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와 맞물리면서 홍보 자체가 묻혀버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대 없이 봤다가 예상 밖의 완성도에 놀랐다는 반응을 쏟아냈지만, 그때는 이미 극장가에서 사라진 뒤였습니다. 죽기 전에 봐야 할 한국 영화 1001 작품에 선정된 것만 봐도 이 영화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스토리와 연출,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준과 태원,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 나타난 수진. 이 삼각구도가 영화의 감정적 뼈대를 이룹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단순한 멜로에 머물지 않는 이유는 포화 잠수(Saturation Diving)라는 실제 기술을 중심에 놓고 이야기를 전개하기 때문입니다. 포화 잠수란 잠수사가 고압 환경에 장기간 적응한 상태에서 수백 미터 심해까지 작업을 수행하는 기법으로, 일반 스쿠버 다이빙과는 차원이 다른 고도의 기술입니다. 영화에서 수심 187m 구조 작전이 전례 없는 일로 묘사되는 것도 이 포화 잠수의 한계치와 위험성을 반영한 설정입니다.
잠수병(Decompression Sickness)이라는 개념도 핵심 키워드로 등장합니다. 잠수병이란 수중에서 증가된 압력 환경에 노출됐다가 빠르게 수면으로 올라올 때 혈액과 조직 속 질소 기포가 팽창해 신체 곳곳에 심각한 손상을 일으키는 질환입니다. 영화 속 태원이 이미 잠수병을 앓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장면은, 단순한 드라마적 반전을 넘어 실제 잠수 현장의 위험성을 꽤 정확하게 짚고 있습니다.
군 내부의 부조리와 상명하복 문화도 영화가 놓치지 않은 부분입니다. 최 중령이 대원들의 잠수 일지도 확인하지 않은 채 무리한 작전을 강행하고, 본인의 커리어를 위해 대원들의 안전을 담보로 삼는 장면은 불편하지만 현실적입니다. 저도 군 생활을 해봤지만, 이런 유형의 지휘관이 완전히 허구라고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영화가 받은 평가 중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제20회 칸 국제 영화제 촬영상 수상입니다(출처: 한국영화진흥위원회). 심해 장면의 영상미와 촬영 완성도가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았다는 뜻입니다. 시나리오나 서사보다 영상 언어 측면에서 이 영화의 진가가 더 크게 발휘된다는 평가가 그래서 나오는 것입니다.
블루의 완성도를 높인 핵심 요소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SSU 실제 자문과 훈련 방식을 그대로 반영한 현장감
- 포화 잠수, 잠수병 등 전문 기술 개념의 사실적인 묘사
- 신현준, 김영호, 신은경 세 주연의 고른 연기력
- 칸 국제 영화제 촬영상을 받을 만큼의 영상미
- 군 내부 부조리와 은폐 구조에 대한 현실적인 묘사
지금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
그렇다면 20년이 훌쩍 넘은 이 영화를 지금 볼 이유가 있을까요? 저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한국 해양 특수전 부대를 다룬 작품 자체가 지금도 극히 드물기 때문입니다. 한국 해군이 보유한 특수전 전력의 실상은 일반인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국방부에 따르면 해군 특수전 부대는 국가 안보와 직결된 핵심 전력으로 운용되며, 공개 가능한 훈련 정보도 극히 제한적입니다(출처: 대한민국 해군).
신은경 배우가 이 영화에서 굉장히 멋있어 보였다는 제 기억도 솔직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당시 저한테는 꽤 인상 깊은 배우였는데, 이후의 여러 사건들을 떠올리면 영화에 대한 감상이 묘하게 복잡해지기도 합니다. 그래도 영화 자체의 완성도는 배우의 이후 행보와 별개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러브라인의 전개가 다소 예측 가능하고 일부 장면에서 전개 속도가 급하게 느껴지는 것은 분명한 한계입니다. 그러나 당시 충무로가 시도할 수 있는 최선을 끌어낸 작품이라는 점에서, 이 영화를 한국 액션 장르의 숨은 자산으로 부르는 것이 과하지 않습니다.
혹시 아직 블루를 보지 않으셨다면, JSA나 친구 같은 2000년대 한국 영화에 향수가 있는 분이라면 특히 추천드립니다. 심해보다 더 깊다는 두 남자의 우정 이야기, 생각보다 오래 마음에 남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