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이 영화를 개봉날 극장에서 봤음에도 그 이후로 몇 번을 더 봤는지 셀 수가 없습니다. 처음엔 그냥 재밌는 여름 액션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볼수록 왜 1,340만 명이 극장을 찾았는지 납득하게 되었습니다. 단순한 오락을 넘어 현실의 어딘가를 건드리는 영화였기 때문입니다.

    1,340만을 끌어모은 흥행 배경

    베테랑은 2015년 개봉 당시 국내 박스오피스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류승완 감독의 역대 최고 흥행작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흥행을 단순히 "재밌는 액션 영화라서"로만 설명하기엔 뭔가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동력은 실화 모티브입니다. 영화는 2010년 실제로 발생한 맷값 폭행 사건을 중심 소재로 삼았습니다. 여기서 맷값 폭행 사건이란, 한 기업 대표가 자사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던 시위자를 사무실로 불러들인 후 임직원들 앞에서 "한 대에 얼마씩"이라며 폭행한 실제 사건을 말합니다. 제가 개봉 당시를 기억해보면, 사람들이 극장을 나오면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래"라는 말을 주고받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 분노가 흥행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또한 2007년 한화 재벌 3세 보복 폭행 사건 등 다른 사례들도 참고하여 영화가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단순한 픽션이 아니라 사회 고발의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습니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KOFIC)의 통계에 따르면, 베테랑은 2015년 한국 개봉 영화 중 관객 수 1위를 기록했습니다(출처: 한국영화진흥위원회). 저는 이 수치가 단순히 "재밌어서"가 아니라, 관객이 영화 속 이야기에서 현실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류승완 감독의 또 다른 특기는 사회적 소재를 다루면서도 오락성을 놓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일반적으로 사회 고발 영화는 무겁고 진지한 방향으로 흐르기 쉬운데, 베테랑은 코믹한 팀워크 장면과 화끈한 액션 시퀀스를 적절히 배치하여 무게 중심을 잃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균형 감각이 류승완 감독만의 강점이라고 봅니다.

    조태오 캐릭터 분석, 왜 최고의 악역인가

    영화를 본 분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보셨을 겁니다. "악역인데 왜 이렇게 눈에 띄지?" 저도 처음 봤을 때 분명 서도철을 응원하면서 보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조태오가 더 기억에 남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악역 캐릭터의 매력을 만드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 접근이 있습니다.

    • 백스토리형 악역: 악역이 된 사연과 배경을 상세히 풀어내어, 관객이 악역의 행동에 일정한 납득을 하게 만드는 방식
    • 순수 악 캐릭터: 아무런 사연이나 설명 없이 '악 그 자체'로 존재하는 방식. 동정이나 연민의 여지를 주지 않아 오히려 강렬한 인상을 남김

    조태오는 명확하게 후자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것이 촬영 현장에서 유아인 배우 본인이 류승완 감독에게 제안한 방향이었다고 합니다. "그냥 나쁜 놈으로 가자"는 그 제안이 결과적으로 2010년대 한국 영화 최고의 악역을 만들어냈습니다.

    여기서 캐릭터 아키타입이라는 개념을 잠깐 짚고 넘어가면, 이는 이야기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전형적인 인물 유형을 의미합니다. 조태오는 이 아키타입 중 '섀도우(shadow)', 즉 주인공과 정반대의 가치관을 가진 존재로 기능하며, 서도철이라는 정의의 캐릭터를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킵니다.

    제가 직접 여러 번 되감아 보면서 느낀 건, 조태오가 매력적인 이유가 단순히 폭력성 때문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는 때때로 엘리베이터에서 타인의 탑승을 권유하는 등 형식적인 호의를 베풉니다. 그런데 그 행동이 선의에서 나온 게 아님을 이미 알고 있는 관객은 그 장면에서 오히려 더 섬뜩함을 느낍니다. 빈 껍데기의 친절함이 폭력보다 더 무서운 순간이 있습니다.

    유아인 배우의 연기는 이 미묘한 지점을 정확하게 표현해냈습니다. 제 경험상, 이 연기를 보고 나서 유아인을 단순한 외모 중심의 배우로 보는 시각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이 작품이 그가 본격적인 연기파 배우로 인정받는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합니다.

    권선징악 구조와 대리 만족, 지금도 유효한가

    베테랑이 권선징악이라는 고전적인 서사 구조를 취하고 있다는 데 이견을 달 분은 많지 않을 겁니다. 악인이 결국 벌을 받는 단순한 구도입니다. 그런데 이걸 두고 "너무 단순한 영화 아닌가"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 단순함이 오히려 이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인공 서도철은 카타르시스(catharsis) 기능을 수행하는 캐릭터입니다. 카타르시스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유래한 개념으로, 관객이 극적 경험을 통해 억눌린 감정을 해소하고 정화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현실에서 재벌 갑질에 맞서 싸우기 어려운 우리가, 서도철을 통해 그 억눌린 분노를 대리 해소하는 구조입니다.

    물론 현실은 영화처럼 되지 않는다는 걸 압니다. 서도철처럼 조직의 위계를 뛰어넘어 단독으로 수사를 밀어붙이는 경찰은 실제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인물이 조직 내에 있다면 오히려 조직이 작동하지 못할 겁니다. 영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게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픽션은 현실의 한계를 상상력으로 채우는 장르이고, 베테랑은 그 역할을 제대로 해냈습니다.

    마지막 장면, 서도철이 조태오에게 정당방위를 성립시키기 위해 초반에 일부러 맞아주다가 조건이 성립하자 제대로 반격하는 장면은 지금 봐도 쾌감이 대단합니다. 황정민 배우가 특유의 투박하지만 인간미 넘치는 연기로 구현해낸 서도철이 있었기에, 그 장면의 무게가 살았다고 봅니다.

    영상물등급위원회 공식 자료에 따르면 베테랑은 15세 이상 관람가 판정을 받았으며, 이는 이 영화가 폭력성보다는 사회적 메시지와 오락적 완성도에 방점을 찍은 작품임을 뒷받침합니다(출처: 영상물등급위원회).

    막힌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영화가 필요한 순간이 있습니다. 저는 그럴 때마다 베테랑을 다시 꺼내 보곤 합니다. 이미 보신 분이라도 한 번 더 보시면 처음과는 다른 부분이 눈에 들어올 겁니다. 아직 보지 않으신 분이라면, 지금이 딱 좋은 타이밍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sMpzdgHrI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