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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이 영화 봤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괜히 뒤처진 기분이 드는 작품이 있습니다. 저한테는 이창동 감독의 버닝(2018)이 딱 그랬습니다. 개봉 당시에는 그냥 지나쳤다가, 전종서 배우의 다른 작품에 빠지면서 결국 뒤늦게 찾아봤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르가 아닌데도 두 시간 내내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비닐하우스가 말하는 것, 처음엔 몰랐습니다
영화를 보다 보면 벤이 "비닐하우스를 태운다"는 말을 꺼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처음에는 그냥 기이한 취미 이야기인 줄 알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이 장면을 단순한 스릴러적 복선으로 받아들이기 쉬운데, 저는 보면서 점점 다르게 읽혔습니다.
여기서 비닐하우스는 단순한 건축물이 아닙니다. 영화 속 비닐하우스란 사회적으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아서 사라져도 누군가 신경 쓰지 않는 존재, 즉 해미 같은 사람들을 가리키는 메타포입니다. 메타포(Metaphor)란 어떤 대상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 다른 사물이나 개념에 빗대어 표현하는 문학적 기법으로, 이창동 감독은 이 기법을 영화 전반에 걸쳐 치밀하게 배치했습니다.
제가 이 장면을 다시 돌려봤을 때, 벤의 표정이 굉장히 의미심장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는 이걸 "재미로 한다"고 말합니다. 가진 자의 입장에서 없는 존재를 지우는 행위를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그 무감각함, 저는 거기서 소름이 돋았습니다. 이창동 감독의 작품들은 늘 그런 식으로 메시지를 던집니다. 직접 설명하지 않고 관객 스스로 끌어내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미장센으로 쌓아올린 불안감
버닝은 내러티브보다 미장센(Mise-en-scène)으로 훨씬 더 많은 것을 말하는 영화입니다. 미장센이란 화면 안에 담기는 모든 시각적 요소, 즉 조명, 인물 배치, 공간 구성, 색감 등을 총칭하는 영화 용어입니다. 쉽게 말해 "카메라가 무엇을 어떻게 담느냐"가 바로 미장센입니다.
저는 솔직히 처음 볼 때는 이 부분을 흘려봤습니다. 그런데 몇몇 장면을 다시 확인하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종수의 파주 집은 늘 어둡고 허름하게 찍히고, 벤의 강남 아파트는 빛이 넘칩니다. 두 공간의 대비가 계급 격차를 설명 없이 보여줍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벌판에서 해미가 춤을 추는 장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장면은 아름답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한데, 그 감정이 뒤섞이는 이유가 바로 미장센 때문입니다.
영화 속에서 종수의 시점으로만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이를 신뢰할 수 없는 화자(Unreliable Narrator) 기법이라고 합니다. 신뢰할 수 없는 화자란 이야기를 전달하는 인물의 판단이나 인식이 왜곡되어 있어 독자나 관객이 그 말을 전적으로 믿을 수 없는 서사 구조를 말합니다. 이 기법 때문에 해미의 실종이 벤의 범행인지, 아니면 종수의 피해망상이 만들어낸 이야기인지 끝까지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서사 전략은 이창동 감독이 이전 작품에서도 꾸준히 활용해온 방식입니다. 영화 전문 매체들이 버닝을 두고 칸 영화제 국제비평가연맹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평가한 것도 이 복잡한 구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습니다(출처: 칸 영화제 공식 사이트).
열린결말, 답을 주지 않는 것이 답입니다
일반적으로 영화는 결말에서 어느 정도 해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랬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종수가 벤을 칼로 찌르고 옷을 벗어 던진 채 차를 태우는 장면이 나왔을 때, 제 첫 반응은 "이게 진짜야, 상상이야?"였습니다.
버닝의 열린결말(Open Ending)은 관객에게 해석의 여지를 완전히 열어두는 구조입니다. 열린결말이란 이야기의 사건이나 갈등이 명확히 해소되지 않은 채 끝나 관객 스스로 의미를 완성해야 하는 서사 방식입니다. 영화 속 마지막 장면이 종수가 원고지 앞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한 직후에 등장한다는 점에서, 이 살인 장면 전체가 종수가 쓴 소설일 가능성을 충분히 읽어낼 수 있습니다.
버닝이 던지는 질문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해미가 말한 어린 시절 우물은 실제로 존재했는가
- 벤의 집 화장실에서 발견된 분홍색 시계는 정말 해미의 것인가
- 벤이 데려온 고양이 '보일이'는 해미가 키우던 그 고양이인가
- 마지막 살인 장면은 현실인가, 종수가 쓴 소설인가
이 질문들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풀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창동 감독은 의도적으로 풀지 않았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것이 바로 이 영화의 핵심입니다. 아무것도 증명되지 않는 세상, 분노해도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종수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가 소설을 쓰는 것이었다는 해석, 저는 그게 가장 설득력 있게 다가왔습니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버닝은 국내 예술영화 부문에서 장기 상영 기록을 세웠으며, 이는 입소문을 타고 뒤늦게 찾아보는 관객이 많았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출처: 한국영화진흥위원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르가 아닌데도 이 영화는 오래 머릿속에 남습니다. 유아인 배우에 대해서는 작품 밖 이야기를 꺼내기가 조심스러워 여기서는 생략하지만, 작품 안의 연기만큼은 종수의 무력감과 분노를 정말 잘 담아냈다고 생각합니다. 버닝은 명쾌한 카타르시스보다 긴 여운을 원하는 분들에게 맞는 영화입니다. 한 번에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냥 흘러가듯 보고, 끝나고 나서 천천히 생각해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