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예쁜 배우가 나오면 연기가 아쉽다는 편견, 가져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솔직히 그랬습니다. 그런데 한지민 배우가 주연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 편견이 완전히 무너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대학 시절 학교 근처에서 실물로 몇 번 마주쳤던 그 배우가, 스크린 안에서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게 믿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한지민의 연기변신,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제가 한지민 배우를 처음 실물로 봤을 때 솔직히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얼굴이 손바닥보다 작고, 화면 속보다 훨씬 더 예쁘더라고요. 그래서 오히려 걱정이 됐습니다. 이렇게 예쁜 배우가 거칠고 결핍된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거든요.
미쓰백의 주인공 백상아는 전과 기록이 있는 여성으로, 한겨울 세차장 아르바이트를 하며 하루하루를 버텨가는 인물입니다. 영화에서 사용되는 연기 방식은 이른바 스타니슬랍스키 메소드(Stanislavski Method)에 가깝습니다. 여기서 메소드 연기란 배우가 캐릭터의 감정과 경험을 실제 자신의 것처럼 내면화하여 표현하는 기법으로, 외형적인 연기보다 내면의 감정 리얼리티를 우선시하는 방식입니다. 한지민 배우가 보여준 절제된 눈빛과 터져 나오는 감정선은 이 기법의 정수를 보여준 장면들이었습니다.
예고편을 처음 봤을 때부터 뭔가 달랐습니다. 제가 직접 극장에서 확인하고 나서야 그 느낌이 왜 그랬는지 알았습니다. 배우가 연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어려울 정도로 먹먹한 여운이 남았는데, 그게 단순히 스토리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백상아라는 인물 자체가 눈에 밟혀서 극장 문을 나서는 내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아동학대를 다루는 방식이 다른 영화와 무엇이 다른가
이지원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집필했고, 본인이 경험한 일화를 모티브로 했다는 점이 영화 전반에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아동학대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이미 여럿 있었지만, 미쓰백이 차별화되는 지점은 분명합니다.
아동학대(Child Abuse)란 보호자를 포함한 성인이 아동의 건강·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인 발달을 저해하는 신체적·정서적·성적 폭력, 그리고 방임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방임(Neglect)이란 보호자가 아동에게 기본적인 의식주, 의료, 교육 등을 제공하지 않는 행위를 뜻합니다. 영화 속 지은이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경험하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보건복지부 아동학대 통계에 따르면 국내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해마다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2022년 기준 아동학대 판단 건수는 4만 건을 넘어섰습니다(출처: 보건복지부). 이 숫자가 가리키는 현실이 영화 속 지은이의 일상과 겹쳐 보이면서, 단순한 픽션으로 소비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영화가 택한 접근 방식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가해자를 단순한 악인으로 묘사하지 않고, 구조적 방치를 함께 조명함
- 피해 아동을 구원받는 수동적 존재가 아닌, 능동적 감정을 가진 인물로 설정함
- 모성애가 아닌 인물 대 인물의 연대로 관계를 풀어냄
- 경찰, 복지 시스템 등 사회 안전망의 한계를 사실적으로 묘사함
제가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상아가 자신의 상처를 지은이에게 먼저 보여주는 부분이었습니다. 위로하는 사람이 더 큰 상처를 갖고 있다는 설정, 그게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느꼈습니다.
영화 미쓰백,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작품성과 연출, 배우들의 연기까지 세 요소가 고르게 맞아떨어진 영화라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엔딩 처리에서 한 가지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1년 후의 모습을 보여주며 지은이가 밝아졌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이, 오히려 영화 전반의 여운을 조금 희석시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의 내러티브 구조(Narrative Structure), 즉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과 흐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열린 결말(Open Ending)이 더 강렬한 여운을 남겼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열린 결말이란 이야기의 결론을 명확히 제시하지 않고 관객의 해석에 맡기는 방식으로, 감정적 잔상이 오래 남는 특성이 있습니다. 현재의 연출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 영화가 쌓아 올린 감정의 무게라면, 조금 더 여백을 줬을 때 더 강하게 남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 영화는 매우 탄탄합니다. 캐릭터 아크란 인물이 이야기 안에서 심리적·감정적으로 변화해나가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상아가 자신의 과거와 어떻게 마주하고, 지은이를 통해 어떻게 변화하는지가 억지 없이 자연스럽게 그려집니다. 아동학대를 다룬 영화들이 종종 빠지는 감정 과잉 없이 담담한 톤을 유지하면서도 충분히 아프게 전달되는 것이 이 영화만의 강점입니다.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 자료에 따르면 미쓰백은 2018년 개봉 당시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평론가들의 호평과 관객 입소문으로 꾸준히 재조명받고 있는 작품입니다(출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 흥행 성적보다 오래 남는 영화가 있다는 걸 이 작품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소재가 무거운 만큼 장르의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영화입니다. 그러나 소재나 장르의 취향을 떠나서, 적어도 한 번쯤은 볼 가치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특히 한지민 배우의 연기를 인상 깊게 본 분이라면, 이 영화가 그분에 대한 시선을 완전히 바꿔놓을 겁니다. 저처럼 실물을 직접 봤던 사람도 스크린 속 그 배우가 낯설게 느껴질 만큼, 그 변신은 분명하고 강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