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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차승원 배우가 이렇게 무서울 수 있다는 걸 몰랐습니다. 예능에서 보던 편안한 이미지가 너무 강했거든요.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서 그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박훈정 감독 특유의 느와르 문법 안에서 차승원이 만들어낸 캐릭터, 마이사는 단순한 빌런이 아니었습니다.

     

    '마이사'라는 캐릭터가 왜 이렇게 기억에 남는가

    일반적으로 느와르 영화의 빌런은 차갑고 무자비한 이미지로 기억됩니다. 관객은 그 캐릭터에게 두려움만 느끼죠. 그런데 제 경험상 마이사는 조금 달랐습니다. 느릿느릿한 말투와 거대한 조직력으로 압도적인 위압감을 풍기면서도, 어딘가 은근히 웃음 포인트가 생기는 캐릭터였거든요.

    보스를 직접 제거하려 한 태구에게 제대로 복수도 못하고, 오히려 엄태구, 전여빈 같은 후배들한테 반말 들으면서 분을 삭이는 장면이 있습니다. 카리스마 있는 조직의 수장이 그 상황에서 빡쳐하는 모습이 뭔가 묘하게 웃겼습니다. 저는 이걸 캐릭터의 결함이 아니라, 오히려 입체감이라고 봤습니다.

    여기서 느와르(Noir)란 범죄, 폭력, 도덕적 모호함을 중심으로 어두운 세계관을 그려내는 장르를 말합니다. 한국 느와르는 특히 조직 내 위계질서와 배신, 의리라는 코드를 강하게 활용하는 경향이 있는데, 마이사는 그 문법을 비틀어서 웃음과 긴장감을 동시에 만들어냈습니다.

    차승원 배우는 이 역할로 엄청난 밈(meme)을 만들어냈습니다. 여기서 밈이란 특정 장면이나 대사가 인터넷에서 반복적으로 재생산되며 유행하는 문화적 단위를 뜻합니다. 실제로 한 개그맨이 마이사 성대모사를 하는 영상이 퍼지면서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도 이 캐릭터를 알게 됐습니다. 개그맨 영상만 봤던 분들도 원작을 보면 또 다른 충격을 받으실 겁니다.

    마이사가 기억에 남는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느릿한 말투 안에 숨겨진 폭력성과 위압감
    • 강한 캐릭터임에도 상황에 치이는 현실적인 굴욕감
    • 밈으로 소비되면서도 원작에서 더 강하게 느껴지는 카리스마

    박훈정 감독 특유의 유머와 제주도 배경

    이 영화를 고른 이유 중 하나는 박훈정 감독이라는 이름 때문이었습니다. 신세계, 브이아이피, 마녀를 연출한 감독이니까 고민 없이 선택했죠. 그런데 제가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바로 영화 전반에 깔린 유머 코드였습니다.

    일반적으로 박훈정 감독의 작품이라고 하면 폭력적이고 어두운 분위기를 먼저 떠올립니다. 실제로 피가 많이 나오고 전체적인 톤은 무겁습니다. 그런데 그 무거운 분위기 사이사이에 피식 웃게 만드는 장면들이 교묘하게 삽입되어 있습니다.

    제가 특히 좋았던 장면은 이겁니다. 전여빈이 물회를 먹으면서 술을 권하는데, 엄태구가 운전해야 한다며 거절합니다. 그러자 전여빈이 "제주도는 단속 없다"며 막 마시라고 부추깁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장면에서 음주측정 검문 장면이 나옵니다. 술을 마시지 않은 엄태구는 통과하고, 만취한 전여빈이 한번 봐달라고 진상을 부리는 모습이 나오는데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습니다.

    내러티브(narrative)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 영화는 제주도라는 배경을 단순한 도피처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내러티브란 이야기를 구성하는 흐름과 방식을 말합니다. 폭력과 배신으로 가득한 이야기 사이에 한라산과 푸른 바다로 대표되는 제주도의 풍경을 끼워 넣어서, 관객이 잠깐씩 숨을 고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줍니다. 뜬금없다는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인데, 그 뜬금없음 덕분에 오히려 다음 폭력 장면의 충격이 더 강하게 다가오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영화 속 물회 장면을 보면서 그 식당이 너무 궁금해졌습니다. 제주도 물회는 흔히 한치나 문어를 주재료로 쓰는데, 화면으로 보기만 해도 시원해 보였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다시 볼 기회가 생긴다면 물회 한 그릇과 한라산 소주를 곁들여서 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영화에서 음식이 이렇게 강하게 기억에 남은 건 꽤 드문 일입니다.

    캐릭터 구도와 마지막 결말이 완성하는 것

    박태구를 둘러싼 캐릭터 구도를 보면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태구가 모시는 양 사장은 이 영화에서 가장 얄미운 캐릭터입니다. 조직을 위해 도 회장을 처리하는 데 태구를 이용하고, 자신이 위기에 처하자 태구를 북성파에 넘깁니다. 깡패 세계에도 나름의 위계와 격이 있다고 하는데, 이 양 사장은 그 격도 없는 양아치라는 걸 영화가 내내 보여줍니다.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라는 개념으로 보면, 태구는 조직의 충직한 부하에서 홀로 복수를 결심하는 인물로 변화합니다. 캐릭터 아크란 등장인물이 이야기 안에서 겪는 내면적 변화의 궤적을 뜻합니다. 그런데 태구의 변화보다 제가 더 인상 깊게 본 것은 재연의 마지막 선택이었습니다.

    엄태구와 전여빈이 함께 만들어가는 서사는 영화 중반부터 끊기지 않고 흐릅니다. 제가 이 영화를 집중해서 끝까지 볼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 두 배우 사이의 흐름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결말, 재연이 혼자 북성파 조직원들을 모두 쓸어버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장면은 영화 전반에 흩뿌려진 복선들이 한 번에 수렴되는 느낌을 줬습니다.

    카타르시스(catharsis)라는 말이 이 장면에 딱 맞습니다. 카타르시스란 극적인 장면을 통해 관객이 감정적 해소와 정화를 경험하는 현상을 말하는데, 연구에 따르면 관객이 서사에 감정 이입할수록 결말에서 느끼는 정서적 반응이 강해진다고 합니다(출처: 한국영화학회). 재연의 마지막 장면이 그랬습니다. 중간중간 그녀가 총을 다루는 장면이 왜 나왔는지, 결말에서야 비로소 이해되는 구조였습니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의 장르별 관객 분석 자료에 따르면, 한국 액션 느와르 장르는 2020년대 들어 젊은 관객층보다 30~40대 관객의 선호도가 높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이 영화도 그 흐름 안에 있지만, 재연이라는 캐릭터 덕분에 조금 더 넓은 층이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 생긴 것 같습니다.

    박훈정 감독 작품에 대해 "느와르라고 부를 수 있나" 하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그 분류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봤습니다. 장르 규정보다 영화 자체를 즐기는 쪽이 훨씬 이득입니다. 마이사, 양 사장, 태구, 재연. 이 네 캐릭터만으로도 충분히 볼 이유가 됩니다.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강력히 권합니다. 가능하면 제주도 물회와 한라산 한 병을 준비해서 보시면 더 좋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Xqp919Qx5_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