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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매일 틀고 자던 가습기가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걸, 그 당시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영화 '공기살인'은 실제로 일어났던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바탕으로 한 작품입니다. 10여 년 전 뉴스에서 얼핏 접했던 사건인데, 지금 제 방 한켠에도 가습기가 돌아가고 있는 걸 보면서 영화를 다 보고 나니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가 어떻게 사람을 죽였나
영화는 수영장에서 갑자기 쓰러진 아이 민우의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아버지 태우가 직접 아들의 수술을 집도하면서 발견한 건 완전히 굳어버린 폐였습니다. 여기서 폐 섬유화(Pulmonary Fibrosis)라는 개념이 등장하는데, 쉽게 말해 폐 조직이 딱딱하게 굳어 더 이상 정상적인 호흡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단순한 폐렴과는 차원이 다른 치명적인 상태죠.
더 충격적인 건 아내의 죽음이었습니다. 불과 5개월 전 종합검진에서 폐에 이상이 없었던 사람이 단 하루 만에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 겁니다. 태우가 아내를 직접 부검하면서 발견한 폐는 돌덩이처럼 굳어 있었습니다. 의사로서 그 많은 시간을 함께 살면서도 눈치채지 못했다는 죄책감, 저는 그 장면이 오래도록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원인 규명 과정에서 결정적 단서가 된 건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라는 화학물질이었습니다. PHMG란 항균·살균 목적으로 개발된 고분자 화합물로, 세계보건기구(WHO)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물질을 호흡기로 장기간 흡입할 경우 치명적인 폐 손상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게 가습기 살균제에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는 점이었죠.
피해자들의 공통점은 명확했습니다.
- 피해자의 70% 이상이 영유아, 임산부, 전업주부 등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긴 가족 구성원이었습니다
- 환자 발생이 봄철에 집중되는 계절성 패턴을 보였습니다 — 겨울 내내 실내에서 가습기를 틀다가 봄에 증상이 폭발적으로 나타난 것이죠
- 모든 피해 가정에서 가습기와 가습기 살균제가 동시에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 질병관리본부 동물 실험에서 2주 만에 실험 쥐 전체가 폐질환과 합병증으로 폐사했습니다
어떻게 이 제품이 10년 넘게 팔렸나
이 부분이 저는 가장 이해가 안 됐습니다. 유해한 물질이 든 제품이 어떻게 무려 1994년부터 2011년까지 아무런 제재 없이 시중에 유통될 수 있었을까요?
핵심은 가습기 살균제가 '공산품'으로 분류되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공산품이란 의약품이나 화학물질처럼 국가의 별도 허가나 독성 심사 없이도 제조·유통이 가능한 일반 소비재를 의미합니다. 즉, 법의 허점을 이용해 인체에 직접 닿는 물질이 안전성 검증 없이 그대로 판매대에 올라간 것이었죠. "나라에서 안전 인증 받았다"는 광고 문구를 믿었던 소비자들의 잘못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역학 조사(Epidemiological Investigation)라는 개념도 짚어봐야 합니다. 역학 조사란 질병의 원인과 분포를 파악하기 위해 환자 집단을 체계적으로 추적·분석하는 조사를 말합니다. 2006년부터 유사 폐질환 환자가 발생했음에도 봄에만 짧게 나타나다 사라지는 패턴 때문에 제대로 된 역학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이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원인도 모른 채 목숨을 잃었을지, 생각하면 지금도 분합니다.
영화 속 기업 오투의 행태는 실제 사건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언론 보도가 시작되자 관련 서류를 재빠르게 파기하고, 정치인을 섭외하고, 검찰을 압박하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제가 직접 보면서 이게 영화 속 허구라고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실제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들이 사건 초기에 보인 태도와 너무 닮아 있었거든요. 환경부(출처: 환경부) 공식 자료에 따르면, 1994년부터 판매가 중단된 2011년까지 가습기 살균제 판매량은 약 천만 통에 달했습니다.
그래서 재판은 지금 어디쯤 왔나
영화의 후반부는 재판으로 흘러갑니다. 검사 출신 영주가 피해자들의 변호사로 나서지만, 상대는 전관예우(前官禮遇)를 등에 업은 대형 로펌이었습니다. 전관예우란 전직 판사나 검사 출신 변호사가 자신의 인맥과 경험을 활용해 재판에서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낸다는 관행을 말하는데, 이게 단순한 의혹이 아닌 현실로 작동한다는 걸 영화는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영주가 공동 변호를 부탁하며 공을 들였던 자신의 스승이 결국 오투 측 변호인으로 법정에 등장하는 장면은 꽤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이미 자료를 건네받은 상태에서 돈을 더 주는 쪽으로 넘어간 것이었죠.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피해자 가족 입장에서 얼마나 절망스러웠을지, 그 감각이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현실은 영화보다 훨씬 느리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법이 2017년에 제정되었지만,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출처: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정부가 공식 인정한 피해자는 약 4,300명에 그치고 있습니다. 천만 통이 팔렸는데 고작 4,300명이라는 숫자가 정말 맞는 숫자일까요? 살균제 흡입이 자신의 폐질환 원인임을 인식하지 못한 피해자까지 합산하면 실제 피해 규모는 훨씬 클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더구나 이 영화는 촬영 완료 후 무려 5년이 지나서야 개봉됐습니다. 영화 한 편이 세상에 나오는 것조차 이렇게 험난한데, 피해 당사자들이 법정에서 싸우는 일은 얼마나 더 고단할지, 제가 감히 짐작할 수 없는 무게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공기살인'은 완전한 실화인가요, 아니면 픽션이 섞인 건가요?
A. '공기살인'은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모티브로 한 '재난 실화 장르' 영화입니다. 주인공 태우와 영주는 영화적으로 창작된 인물이지만, 가습기 살균제 성분(PHMG)의 독성, 피해자 발생 패턴, 기업의 서류 파기, 법적 공방 등 핵심 사건의 흐름은 실제 사건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습니다. 실화의 무게가 그대로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 있지 않을까요.
Q. PHMG가 왜 그렇게 위험한 건가요?
A.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는 피부에 닿거나 희석해서 쓸 땐 비교적 안전하지만, 가습기를 통해 미세 입자(에어로졸) 형태로 폐 깊숙이 흡입되면 이야기가 전혀 달라집니다. WHO 연구 결과는 장기 흡입 시 치명적 폐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피부용 살균제 성분이 폐로 직접 들어갔을 때의 독성을 아무도 사전에 검증하지 않았다는 게 이 사건의 핵심입니다.
Q. 지금도 가습기 살균제를 쓰면 안 되나요?
A. 2011년 정부의 수거·판매 중단 조치 이후 PHMG 성분의 가습기 살균제는 시중에 유통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가습기 자체를 사용할 때는 살균제 없이 물만 넣고, 주기적으로 세척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그 어떤 첨가제도 흡입 독성이 완전히 검증되기 전까지는 사용하지 않는 쪽이 현명하지 않을까요.
Q. 피해자 구제는 지금 어떻게 되고 있나요?
A. 2017년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법이 제정되어 일부 피해자들이 보상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2022년 기준 정부 공식 인정 피해자는 약 4,300명 수준으로, 실제 피해 규모에 비해 극히 일부만 인정받은 상태라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제조사들과의 소송 및 조정 절차는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결론
영화 '공기살인'을 다 보고 나서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이게 영화라는 사실이 아니라, 이게 전부 실화라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이 사건을 들여다보고 나니, 분노의 방향이 단순히 기업 하나를 향하지 않게 됩니다. 안전 심사 없이 판매를 허용한 제도, 계절성을 이유로 역학 조사를 중단한 당국, 피해 사실을 알고도 서류를 파기한 기업, 그리고 10년이 지나도록 완전한 해답을 내놓지 못하는 사법 시스템까지 전부가 이 참사의 공범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이 영화가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그 불편함이 맞습니다. 불편한 걸 불편하다고 기억하는 것, 그게 지금 피해자들에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이 아닐까요. 영화를 본 뒤 주변에 한 번이라도 이야기를 꺼내보시길, 그리고 여전히 진행 중인 피해 구제 현황에도 관심을 가져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