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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체인지 장르 한국 영화 중 2019년 기준으로 손꼽힐 만큼 흥행했던 작품이 있습니다. 개봉 당시 영화관 기둥마다 대문짝만하게 걸려 있던 홍보 포스터를 보고 저도 결국 혼자 극장을 찾았는데, 보는 내내 팝콘을 손에 든 채 실실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이 영화를 볼까 말까 고민 중이라면, 이 글이 그 판단에 도움이 될 겁니다.
바디체인지 장르인데 왜 이렇게 재미있었나
바디체인지(Body Change)란 두 인물의 영혼 또는 육체가 서로 뒤바뀌는 설정을 기반으로 한 장르 공식을 말합니다. 할리우드에서도 수십 년간 우려먹은 포맷이라 솔직히 식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영화 내 안의 그놈은 이 낡은 틀 위에 토핑을 잔뜩 올렸습니다. 폭력 조직 보스와 고등학생이 몸이 바뀐다는 기본 설정에, 조직 내부 권력 다툼이라는 누아르적 요소, 학교 폭력과 왕따를 다루는 학원물, 첫사랑과 얽힌 신파, 그리고 친자 확인이라는 막장 드라마 요소까지 한 편에 욱여넣었습니다. 도미노피자에 토핑을 다섯 가지 올린 것처럼 무겁지 않으면서도 한 판이 꽉 찬 느낌이랄까요.
제가 직접 극장에서 봤을 때 가장 놀란 건 이 장르 혼합(Genre Blending)이 의외로 자연스럽게 굴러간다는 점이었습니다. 여기서 장르 혼합이란 서로 다른 장르의 문법을 한 작품 안에서 동시에 운용하는 서사 기법을 의미합니다. 보통 이런 시도는 산만하게 끝나기 쉬운데, 이 영화는 코미디라는 뼈대로 전체를 묶어놨기 때문에 어느 장면에서도 맥이 끊기는 느낌이 없었습니다.
이 영화가 관객에게 먹히는 구조적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코미디를 뼈대로 삼아 장르 혼합의 산만함을 상쇄
- 폭력 조직이라는 누아르 설정이 학교라는 공간과 충돌하며 발생하는 갭 코미디
- 신파와 로맨스를 코미디 사이사이에 배치해 감정 과부하 방지
박성웅과 진영, 연기력이 이 영화의 온도를 결정했다
저는 개인적으로 박성웅이 출연하는 영화는 뒤늦게라도 꼭 챙겨보는 편입니다. 태왕사신기에서 주무치 역으로 존재감을 각인시킨 이후로 쭉 지켜봐 왔는데, 이 배우의 가장 큰 강점은 캐릭터의 진폭(Character Range), 즉 한 배우가 소화할 수 있는 캐릭터의 감정 및 성격 스펙트럼이 비정상적으로 넓다는 점입니다.
내 안의 그놈에서 박성웅은 조직 보스 장판수를 연기하지만, 실제로 더 어려운 건 고등학생의 몸 안에 들어간 장판수를 표현하는 역할을 맡은 진영입니다. 여기서 진영이 해야 할 일은 단순히 아이돌 외모로 화면을 채우는 게 아니라, 40대 폭력 조직 보스의 행동 패턴과 말투를 10대 청소년의 몸으로 구현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보기엔 이 역할에서 진영이 기대 이상의 결과물을 냈습니다. 특히 분장한 상태에서의 눈빛 연기와 액션 신이 가장 좋았고, 오히려 영화 전체에서 가장 빛난 퍼포먼스를 보여준 건 진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박성웅은 고등학생의 몸을 가진 장판수, 즉 성인의 인식을 그대로 가진 채 어린 몸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인물을 연기합니다. 캐릭터의 내면 갈등을 표현하는 데 있어 이 배우는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단지 이 영화에서는 스크린타임(Screen Time), 즉 특정 배우가 화면에 등장하는 비중이 진영에게 훨씬 유리하게 편성된 구조라 박성웅 팬이라면 다소 아쉬울 수 있습니다. 솔직히 이건 저도 예상 밖이었습니다.
국내 영화 산업에서 장르 코미디 흥행 요인을 분석한 연구들에 따르면, 주연 배우의 신뢰도(Credibility)와 장르 기대치의 충족 여부가 관객 만족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출처: 한국영화진흥위원회). 이 영화는 그 두 가지를 어느 정도 충족했기 때문에 흥행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수민과 라미란, 서브 서사가 이 영화를 붙잡는다
제가 이 영화를 보러 간 또 다른 이유는 이수민 배우였습니다. 당시 여동생 보는 것처럼 잘 됐으면 하는 마음이 있던 배우라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기대가 있었는데, 이수민이 연기한 현정 캐릭터는 왕따 피해자이자 뒤늦게 발견된 아버지의 딸이라는 복합적인 위치에 있습니다.
영화에서 현정의 서사는 단순한 로맨스 라인에 그치지 않습니다. 유전자 검사 결과로 부녀 관계가 확인되는 장면, 왕따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는 학교 장면, 그리고 몸이 바뀐 아버지와 딸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겹겹이 쌓이면서 나름의 감정선을 만들어냅니다.
라미란이 연기한 미선, 즉 첫사랑이자 현정의 엄마 캐릭터는 멜로드라마적 개연성(Melodramatic Plausibility)을 담당합니다. 여기서 개연성이란 관객이 인물의 선택과 감정을 납득할 수 있도록 서사 안에서 충분한 맥락을 제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거와 현재의 감정이 교차하는 장면에서 라미란 특유의 무게감이 영화의 신파 수위를 적절하게 조절해 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2019년 당시 이 영화의 관객 수는 350만 명을 넘어서며 손익분기점을 훌쩍 뛰어넘었습니다(출처: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수치만 봐도 관객이 서브 서사까지 포함해 이 영화 전체를 충분히 받아들였다는 방증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류의 영화는 주연만큼 조연의 균형이 흥행을 좌우하는데, 이 영화는 그 균형을 나쁘지 않게 맞췄다고 봅니다.
결말이 다소 급하게 마무리된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습니다. 다 보고 나면 뭔가 아쉬운 여운이 남는데, 그렇다고 돈이 아깝다거나 시간이 낭비됐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가볍게 웃고 싶은 날, 특히 혼자 극장 가서 팝콘이나 버터구이오징어 하나 들고 아무 생각 없이 즐기고 싶은 분들에게 이 영화는 꽤 괜찮은 선택지입니다. 다만 탄탄한 시나리오나 블록버스터급 스케일을 기대하고 간다면 실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영화를 고르는 기준이 명확한 분이라면 그 기준을 먼저 확인하고 선택하시길 권합니다.